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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님, 조용기 목사

목사님을 떠나보내며


우리는 롤 모델이 필요합니다. 닮고 싶은 대상이 있으면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기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겠지요. 나의 롤 모델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형님을 천국에 보내드리고 초점을 잃은 사람처럼 멍한 상태로 보내고 있습니다. 평생을 함께했던 큰형님이자 큰 산 같았던 조 목사님, 그런 롤 모델의 부재로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외부와 연락을 끊고 큰 산과 같았던 형님의 삶을 되돌아봤습니다.

나의 형님은 폐결핵으로 고등학교 2학년 과정도 마치지 못했습니다. 비록 학교는 더 이상 다니지 못했으나 공부에 대한 열의는 조금도 식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였지만, 형님이 부엌 앞 한편에 놓인 돌절구에 몸을 기댄 채 열심히 책을 읽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책 표지는 눈을 가지 위에 잔뜩 얹은 나무들이 빼곡히 섰는데 어떤 사람이 스키를 타고 그사이를 내려오는 사진이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책이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인 걸 알았습니다.

형님은 독서광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어사전을 통째로 암기하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훗날 형님이 영어 설교 통역하는 것을 들으면서 형님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나와는 형제간이기 때문에 나도 당연히 영어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유추를 하게 됐습니다.

내가 영어를 웬만큼 하게 되어서야 형님이 한국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아니란 사실도 알게 되었지만, 한 가지 여전한 것은 형님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영어 설교가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형님이 폐병을 앓던 시절에 쓴 일기장을 내가 오랫동안 보관해 왔습니다. 읽을 때마다 감탄과 더불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갱지를 손으로 엮어서 만든 노트에 적은 일기장인데, 반 정도는 한자로 적었고 어떤 때는 영어나 독일어로 군데군데 끄적거려 놓기도 했습니다.

헤르만 헤세나 니체에 관하여 적기도 했고, 병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받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궁리하다가 ‘스페셜 보너스(Special bonus) 1300환은 동생에게 주기로 했다’고 적어놓은 곳도 있습니다. 그때 나이가 18세, 19세 정도로 아직 십대 소년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1960년대 말 형님은 효과적인 해외선교를 위해 선교지 언어에 능통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불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독일어와 일본어를 습득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셨습니다. 정규과정을 거치며 공부한 평균적인 사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물론 설교도, 선교도, 교육도, 구제도, 목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런 노력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쳐졌기 때문에 더 빛을 발하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 생각합니다. 형님은 많은 분야에서 영적 거인이자 롤 모델입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그 영향은 여전히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도에게 확실히 살아서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조용찬 목사 (순복음영산신학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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