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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그들이 사는 세상

문수정 산업부 차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 14일 약 2285억원을 단숨에 벌어들였다.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던 ㈜광주신세계 주식을 전부 처분하면서다. 무려 83만3330주(지분율 52.08%)나 되는 주식을 한번에 매입한 능력자는 동생 정유경 총괄사장이 책임지고 있는 ㈜신세계였다.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가 오빠의 주식을 전부 사준 것이다.

누군가 돈을 벌면 그 여파로 손해를 보는 이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 ‘빅딜’에서는 광주신세계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 다음 날 광주신세계 주가가 폭락했다. 정 부회장이 지분을 처분한 14일 광주신세계 종가는 22만8500원이었는데, 바로 다음 날 19만5000원에 마감했다. 하루 만에 14.7%나 급락했다. 16일엔 2.05% 더 하락한 19만1000원으로 마감했다. 광주신세계 주가가 이렇게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상장 이후 두 번째라고 한다. 광주신세계는 1995년 문을 연 광주 신세계백화점과 2006년 오픈한 이마트 광주점을 운영하는 회사다. 신세계백화점 계열사에서 빠져 나와 별도로 증권시장에 상장한 시점은 2002년 2월이었다. 그 무렵 재벌 그룹들은 오너 가족이 보유한 계열사를 따로 상장해 승계나 상속 문제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광주신세계를 14일 종가로 계산했을 때 정 부회장이 83만3330주를 매도한 가격 2285억원은 얼핏 봐도 맞지 않는다. 주당 22만8500원이면 매도 가격은 약 1904억원이어야 한다. 실제 거래된 금액과 무려 380억원 이상 차이가 난다. 정 부회장이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계산법이 바뀌었다. 세법상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고려해 종가보다 20% 높은 27만4200원으로 단가를 올렸다.

경영권을 가진 주식을 팔 때 프리미엄을 인정해주는 것은 합리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 경영권 다툼이 있거나 경영권 방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프리미엄’이 의미 있게 작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거래 상대가 신세계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였다. 이 경우 ‘20%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 덕에 광주신세계가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고 해석할 여지는 별로 없다. 신세계는 광주신세계의 실적이 합쳐지면서 재무제표가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비싼 값에 주식을 매입한 것 외에 별다른 성과는 없는데도 재무제표가 좋아졌으니 ‘윈윈’이라는 해석이 썩 와 닿지는 않지만 말이다.

정 부회장은 대체 왜 광주신세계 지분을 모두 팔아 현금을 확보했을까. 최대주주로서 어떤 경영상의 선택이 필요했기 때문일까. 신세계그룹이 공식적으로 밝힌 사유는 ‘정 부회장의 증여세 재원 확보’였다. 경영상 필요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오너가의 개인사를 해결하는 데 신세계그룹이 적극 나서줬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으로부터 이마트 지분 8.22%를 증여받았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3190억원에 해당하는 주식이다. 1917억원이 증여세로 매겨졌고, 정 부회장은 5년 분할 상환을 약속했다. 그리고 광주신세계 지분을 팔았다. 증여세를 해결하고도 368억원을 남기게 됐다.

그게 얼마큼인지 짐작도 안 되는 숫자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재벌가의 상속·증여세가 너무 많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는데, 통 크게 해결하는 걸 보면 역시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어느 광주신세계 소액주주는 36만8000원을 잃고 속이 쓰린 날들을 보낼 수 있겠다. 보통 사람들의 손해는 누구나 머릿속으로 그려낼 만한 금액이라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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