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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체념적인 너그러움의 시간

요조 가수·작가


이사를 앞두고 집을 보러 다녔다. 이 일은 힘들면서도 재미있고, 초조하면서도 설렌다. 결코 자주 하고 싶은 일이 아님은 확실한데도 막상 집을 보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내 발걸음에는 이상한 경쾌함이 있다. 이 복잡한 마음의 상황을 하나하나 열거해보자면 이렇게 적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꼭 맞는 집을 구해야 한다는 초조함, 이번엔 내가 바라는 집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누군가 살고 있는 집에 이렇게 불쑥불쑥 들어갈 수 있다는 짜릿함, 그 집에서 나는 냄새, 무슨 냄새라고 설명이 불가능한 고유의 집 냄새가 불러오는 내 과거의 기억들, 거기에서 느끼는 생뚱맞음, 집을 본답시고 안방 거실 화장실을 기웃거리면서 관찰하는 나와 다르지 않은 그 집의 생활, 벗어 놓은 양말의 무질서함, 어수선한 설거지거리, 배수구에 끼어 있는 머리카락, 아무 옷이나 걸치고 완전히 방심한 채로 나를 바라보는 지친 얼굴들이 주는 이상한 안도와 슬픔, 그것과는 별개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집에 느끼는 실망감, 그 실망감에 느끼는 미안함, “안녕히 계세요” 하고 집을 나온 뒤 다시 초조함부터 반복되는 마음의 상황….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튜브를 통해 가끔 초대를 받아 방문하며 구경하는 말끔하고 멋스러운 다른 사람들의 집과는 너무나도 다른 날것의 세상을 나는 몇 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할 때마다 바라본다. 그렇게 타인의 집안을 하루 종일 셀 수 없이 본 날에는 마치 인간 삶의 본질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발견하는 집집의 불빛이 무엇을 비추는지,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또 동시에 얼마나 고만고만할지가 다 훤히 보이는 것만 같다. 그날은 오히려 내 집 앞에서 긴장한다. 현관문을 열면 내 집 안의 풍경이 어떻게 보일지, 내 집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지 새삼스럽게 궁금하다. 나는 조심조심 현관문을 연다.

요조 가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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