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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도 다 돈, 돈… 지원금 모아 철거비용 마련도

[자영업자의 눈물, 폐업 그 후] 폐업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들

김기홍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최근 경영난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는 합동분향소 설치가 무산되자 향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경찰은 방역법 위반과 도로점유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을 이유로 분향소 설치를 막았다. 연합뉴스

자영업자 A씨는 2019년 여름 강원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인근에 함바집(건설현장 식당)을 개업했다. 20년간 식당에서 조리업무를 해왔던 터라 아파트 완공까지 2~3년간 건설노동자들을 상대로 무리 없이 장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A씨의 기대는 채 1년이 가지 않아 산산조각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난해 3월부터 매출이 반 토막 나기 시작한 것이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코로나19 방역조치의 일환으로 단체식사 대신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A씨는 관리비에 월세까지 다달이 200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 했지만 쪼그라든 매출로는 턱도 없었다. 결국 지난해 말부터 임대보증금(4000만원)에서 월세를 까는 방식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면 사정이 나아질 줄 알았던 A씨는 결국 지난 7월 폐업을 결정했다.

힘들게 폐업을 결정했지만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4~5개월 정도 남은 임대 계약기간이 발목을 잡았다. 임대인은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올 때까지 중도 계약해지는 안 된다”고 통보했다. 또 임대인은 “다음 임차인을 받으려면 어떤 업종이 들어와도 바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식당 설비를 모두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임대차 계약에 특약사항이었던 ‘원상복구’를 근거로 제시했다.

A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남은 계약 기간을 버티자니 가만히 앉아 수백만원의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A씨는 16일 “시간을 끌면 손해만 더 커질 것 같아 빠른 시간 안에 철거하는 조건으로 바로 계약해지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철거비용으로 A씨가 지출한 돈은 1000만원에 달한다. 그간 내지 못한 월세까지 정산해 A씨가 임대인에게서 돌려받은 보증금은 500만원 남짓이었다. A씨는 “어떻게든 빠르게 자영업자의 길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수천만원의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A씨처럼 갈림길에 선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에겐 폐업조차 쉽지 않다. 건물주 등 임대인이 원상복구 의무를 두고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폐업을 결정한 스터디카페 자영업자 B씨도 사업 정리 결정 이후 더 큰 고민에 빠졌다. B씨는 기존 스터디카페를 지난해 초 이전 주인으로부터 같은 계약조건으로 넘겨받았다. 그런데 기존 주인이 체결했던 임대차 계약서에 특약사항으로 ‘공간 구조 변경 시 계약 종료 후 원상복구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임대인은 B씨에게 인테리어를 모두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공간 구조를 크게 바꿔야 했던 스터디카페 특성상 복구비용도 다른 업종에 비해 컸다. 스터디카페 구조 시설물을 모두 뜯어내고 되돌리는 데 3000만원의 견적이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고로 마지못해 영업 중단을 결정하고도 임대인 요구로 쉽게 발을 빼지 못하는 ‘을의 설움’까지 겪자 B씨는 폐업지원 컨설턴트를 찾았다. 컨설턴트는 임차인과 임대인의 의견을 모아 절충안을 내놨다. 그 결과 본래 8월 내로 폐업을 마무리하려 했던 B씨의 계획을 연말까지로 늦추는 대신 원상복구 범위를 일부 완화해주도록 했다.

폐업지원 컨설턴트인 김모씨는 “코로나19로 임대인과 자영업자 모두 힘든 상황이다 보니 중재안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라며 “그렇다 보니 손해를 보더라도 폐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자영업자’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자영업자가 철거비용이나 밀린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하루아침에 잠적하는 ‘유령 자영업자’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폐업지원 컨설턴트는 “생각보다 폐업에 들어가는 비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연락을 끊고 야반도주를 해버리는 사례도 있었다”며 “일부 자영업자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영업도 하지 않고 가게를 방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나름대로 코로나19로 인해 경영난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연착륙하며 폐업할 수 있도록 ‘사업정리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취업 또는 재창업 의사가 있는 폐업예정 소상공인에게 폐업절차와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개인 신용관리, 부동산 정리, 새로운 직업 탐색 방법을 안내해주는 식이다. 철거비 부담으로 자포자기하는 자영업자가 늘자 지난해 3월 폐업을 앞둔 자영업자들에게 지원하는 점포철거비를 기존 수십만원에서 최대 200만원(전용면적 3.3㎡당 8만원)으로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정부 지원 규모가 실제 철거비용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에 따르면 식당의 경우 일반적으로 철거비용만 500만원 이상이 든다고 알려져 있다. 내부 인테리어가 많이 들어간 일부 업종에서는 4000만~5000만원까지도 철거비용이 들어간다.

철거비용 등으로 폐업조차 하기 힘들어지자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출혈을 각오하더라도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꾸준히 받아 폐업 자금을 모으는 게 낫다는 소리도 나온다. 폐업을 하면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조차 될 수 없기 때문에 빈 가게를 두고 폐업비용을 마련할 때까지 버티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월세 부담이 클 경우 시도하기 힘들다. 한 폐업지원 컨설턴트는 “자영업자는 폐업을 해야 재취업 자리를 알아볼 수 있는데 폐업이 쉽지 않아 재기도 어렵다”며 “폐업비용을 현실화하는 등 실제 자영업자에게 필요한 현장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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