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서 아프고, 아파서 더 못먹고... “개밥 같아, 허픈 인생” [이슈&탐사]

[빈자의 식탁: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③ 월세·의료비에 밀리는 식비

더 생생한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인터넷 주소창에 넣어주세요.
http://www.kmib.co.kr/issue/poortable/story3.asp

서울 관악구 옛 고시촌에 사는 장용기(가명·59)씨가 지난달 26일 민간 무료급식 지원단체 ‘해피인’에서 받은 김치가지볶음덮밥을 먹고 있다. 윤성호 기자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비에서 가장 먼저 깎여나가는 것은 식비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월세에, 예상치 못했던 병원비와 약값에 식비는 늘 후순위로 밀린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빈자의 식탁’ 시리즈 취재 과정에서 만난 25명은 대부분 음식의 질보다는 양을 택했고, 건강을 담보로 싸구려 식자재를 사 먹고 있었다.

2011년 회사가 부도난 뒤 서울 관악구 한 고시원으로 들어온 이승수(가명·53)씨는 식사가 빈곤하고 불규칙하다. 고시원에 있으면서 여러 사업을 시도하고 재기를 꿈꿨지만 식단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뷔페식으로 이것저것 저렴하게 나오는 식당(일명 ‘고시식당’)을 가거나 고기, 술을 많이 사 먹었죠. 밖에서 먹는 게 편했으니까요.”

결국 지난해 말 당뇨 판정을 받았다. 합병증으로 다리 신경이 손상됐고 체중이 심하게 줄었다. 키 175㎝에 체중이 88㎏이었던 이씨는 살이 급격하게 빠져 71㎏이 됐다.

어려운 처지를 인정받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지만 여전히 영양상으로 균형 잡힌 음식을 먹기는 어렵다. 수급비 가운데 절반 가까운 돈이 방값으로 나간다. 의료급여 혜택을 받지만 새롭게 의심되는 질환에 대한 비급여 검사는 자신의 돈으로 내야 한다. “얼마 전 병원에서 갑상샘 초음파를 해보자고 했지만 검사비 낼 돈이 없어 일단 미뤘습니다.”

이승수씨가 지난달 6일 책상 의자에 플라스틱판을 얹은 식탁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한 평(3.3㎡) 남짓한 그의 고시원 방은 강된장과 마늘장아찌, 어묵·멸치볶음, 배추김치 냄새로 가득찼다. 최종학 선임기자

지난달 6일 한 평(3.3㎡) 남짓한 방에서 만난 이씨는 책상 의자에 플라스틱판을 얹어 식탁을 만들고 점심을 먹었다. 강된장과 마늘장아찌, 어묵·멸치볶음, 배추김치 냄새가 고시원 복도에 퍼졌다. “유튜브에서 당뇨 전문가들이 나트륨이나 당류 먹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좀 싱싱한 거 먹으라고 하는데… 어렵네요.”

식비보다 약값이 우선인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은 선천적·후천적 질환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적지 않은 의료비가 고정적으로 나가는 탓에 식비를 아끼게 되고 이는 부실한 식사로 이어져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몸이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하는데 오히려 못 먹게 된다.

기초생활수급 가구인 이현진(가명·54)씨와 세 자녀도 병원비와 약값이 식비보다 먼저다. 첫째(25)는 지적장애와 우울증, 셋째(19)는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고 있다. 이씨 본인도 동맥경화와 관절염, 골다공증으로 약을 먹는다. 의료수급 혜택을 받지만 1종에 비해 혜택이 적은 2종이어서 검사, 진료를 받을 때마다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한다. 병원비에 대비해 들어둔 보험의 보험료를 내면 식비는 더 부족해진다. 자주 병원을 오가다 보니 교통비마저 부담이 된다.

삽화 전진이 기자

네 식구가 20만원 정도로 한 달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식탁은 늘 간단하다. 밥은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나라미로 짓고 김치를 제외한 반찬은 한 가지 종류일 때가 많다. 고기는 많아야 두 달에 한 번, 비교적 저렴한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먹는다. 과일은 복지관에서 조금씩 나눠줄 때가 아니면 구경하기 어렵다. “먹는 거 보면 만날 똑같아요. 밥이랑 김치랑 밑반찬 하나 정도죠. 미역국 자주 끓이는데 안에 넣을 게 없어요. 애들 생일에 고기 없이 미역만 끓여줄 때도 있어요.” 음식을 골고루 먹이지 못해 자식들이 아픈 것 같다고, 어머니는 자신을 책망했다.

서울 월곡동에서 혼자 사는 주춘자(80) 할머니도 식비보다 약값이 우선이다. 할머니는 “식비고 뭐고 아끼고 아껴도 (돈이) 며칠 있으면 싹 도둑맞은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고 했다. 할머니는 기초연금과 수급비로 매달 60만원을 받는다. “내가 지금 당뇨약하고 관절약, 혈관약을 먹는데 (소득이 늘면) 그런 한약이 먹고 싶어. 다리에 하지정맥류가 심해서 수술도 하고 싶어. 돈 쓸데가 천지여.”

70대 독거노인이 살던 인천 서구 한 주택의 부엌 사진. 아시아문화원·박민구 작가 제공

주거비도 가난한 사람들이 식비에 돈을 쓰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다. 서울 성북구 반지하 방에 사는 이원이(가명·73) 할머니는 기초연금과 공공일자리로 월 60만원 수입이 있지만 그중 절반인 30만원을 월세로 낸다. 할머니는 “저렴하게 나온 방 중 고르고 골라 이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월세를 40만원씩 달라는 곳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 방세 내고 나면 먹고살 돈은 한참 모자라지.”

서울 한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남승원(가명·63)씨의 냉장고 속 모습. 남씨는 복지관에 무료 급식을 요청했지만 다른 고령층 대기자가 많다는 이유로 음식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강북구의 한 고시원에 사는 김종환(가명·62)씨도 매달 방값으로 30만원씩 쓴다. 세로 2.8m, 가로 1.8m 길이의 좁은 방에 침대와 옷장 겸 책상, 텔레비전이 겹겹이 배치돼 숨 쉴 틈이 없다. 김씨는 “그래도 월 25만원짜리 방보다 세로로 1m가 더 길다. 싼 방에 사는 사람이 오면 ‘영화관 같다’며 부러워한다”고 했다. 월세에 통신비, 교통비까지 더한 필수 고정지출은 50여만원. 자활근로로 택배 일을 하지만 생활비가 늘 빠듯한 탓에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밥과 김치, 직접 만든 밑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고시원 김치는 중국산이라 그런지 배추가 좀 물러요. 다양하게 먹기가 제일 어렵네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위소득 30% 미만(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 기준) 가구의 월평균 식품비(외식비 포함)는 36만8000원으로 중위소득 50% 이상 가구 식품비 74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외식비만 놓고 보면 중위소득 30% 미만 가구는 월평균 11만4000원, 중위소득 50% 이상 가구는 34만원으로 3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가난한 사람들은 식료품 지출이 적을 뿐 아니라 외식 빈도도 크게 낮다는 뜻이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 식생활의 절반을 외식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득에 따른 외식 불평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서울 대학동에서 자신의 한 달 식비가 5만원이라는 52세 남성도 만났다. 뒤늦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그는 복지관과 민간봉사단체에서 도시락과 반찬, 빵 등을 지원받아 끼니를 때운다. 한 끼로 나온 분량을 두 끼나 세 끼로 나눠 먹는다. 키 173㎝에 몸무게는 55㎏이다. 그는 “고기를 못 먹으니 근육도 없고 덩치도 작은 것 같다”고 했다.

“개밥 같아, 허픈 인생”

식비 지출을 최소화한 사람들의 식사는 간단할 때가 많다.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는 제한돼 있고 양이 충분치 않다. 고기와 과일은 찾아보기 힘들고 야채는 신선하지 않다.

장용기(가명·59)씨가 지난달 26일 민간 무료급식 지원단체 ‘해피인’에서 받은 김치가지볶음덮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2년 전부터 관악구 옛 고시촌에 사는 장용기(가명·59)씨는 저소득층에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과 ‘참소중한 센터’에 의지해 하루 두 끼를 해결한다. 취재팀 요청으로 그가 8월 4일부터 보내온 일주일치 식사 사진 14장에는 라면이 5번, 빵이 4번 등장했다. 컵라면과 바나나 혹은 빵과 커피가 한 끼인 사진도 많았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식사는 해피인에서 나눠준 김치가지볶음 덮밥과 팩에 담긴 삼계탕, 편의점 도시락 정도였다.

장씨는 취재팀과 만나 “고기를 양껏 먹고 싶을 때는 큰마음 먹고 4500원짜리 ‘고시식당’ 식권을 산다”고 했다. “어떻게든 밥을 먹긴 하는데 고기를 먹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고시식당에 갑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미리 식당 메뉴를 확인하고 육류가 많이 나오는 쪽으로 가는 거죠.”

홀로 사는 이원이 할머니는 주된 반찬이 김치와 장아찌다. 할머니는 “고기나 생선은 한 달에 한 번도 못 사 먹은 적이 많다. 없이 사니까 답답한 거를 말로 할 수 있겠냐”고 했다. 복지관에서 주는 레토르트 장조림이나 구운 생선만이 할머니가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단백질이다. 코로나19 전에는 복지관을 찾아 급식을 먹었다.


2018년 서울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먹거리 실태를 연구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취약계층 대부분은 고기와 과일을 잘 먹지 못한다. 특히 노인의 경우 전체 평균 대비 육류 섭취율이 50.7%, 과실 섭취율은 21.1%다. 연미영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디지털헬스케어팀장은 “국내 취약계층의 식품 및 영양섭취 실태를 보면 아직 절대적 섭취량이 부족한 상태”라며 “신체 조건이 양호한 취약계층의 경우 신선식품과 육류, 생선, 과일에 대한 요구도가 높다”고 지적했다.

경남 한 소도시에서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전인순(가명·56·여)씨는 푸드뱅크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빵을 지원받아 먹고 있다. 전씨는 전통시장에서 마감 전 떨이로 식자재를 팔 때 장을 본다. 그는 아이들에게 변변찮은 음식만 먹인 것 같아 마음에 늘 미안함이 있다고 했다. “TV에는 화려한 음식들이 많이 나오는데, 아이들은 외식 한 번 못 하며 자랐어요. 가끔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좋은 음식들을 한 번이라도 접했다면 좋았을 텐데….”

기초생활수급자로 서울 성북구 한 지하방에서 혼자 사는 이춘숙(가명·84) 할머니는 반찬이 없으면 맹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허프다’고 했다.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허전하고 슬프다’는 뜻으로 들렸다. “혼자 반찬도 없는 밥 들고 앉아 봐봐요, 얼마나 허픈가. 개밥도 아니고 뭐요 이게.”

치솟는 물가에 “손 떨며 장 봐”

저소득층은 최근 치솟은 물가로 식비 지출을 더욱 줄이고 있다. 열 살 난 외동딸을 홀로 키우는 양정주(가명·41·여)씨는 “항상 마트에 가면 제일 저렴한 쌀을 구매하는데, 원래 3만원이면 샀던 쌀이 어느새 4만원대로 올라 있더라고요. 한 번 살 때마다 손 달달달 떨면서 사야 돼요”라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 홍병훈(가명·64)씨도 “물가가 너무 비싸져서 시장 가서 5000원어치 사면 너무 조금밖에 안 돼요. 반찬 3가지 정도 사서 일주일 겨우 버텨요”라고 했다.

서울 한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80대 노인의 지난달 2일 점심 반찬. 김치와 깍두기, 장아찌, 오이가 신문지 위에 놓여있다. 방극렬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식품) 물가는 1년 전보다 7.3% 상승하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계란(54.6%) 시금치(35.5%) 파(32.9%) 고춧가루(26.1%) 수박(38.1%) 등 식자재와 과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돼지고기(11.0%)와 국산 쇠고기(7.5%) 가격도 올랐다.

아직 본격적인 연구는 없지만 코로나19 팬데믹도 저소득층 식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 상실과 수입 감소로 식비부터 줄인 가구가 상당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상효 연구위원은 “국내 취약계층은 코로나 이후 소득이 줄고 (식자재) 가격이 오르고 일자리를 뺏기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의 식생활은 한층 열악해졌을 것”이라며 “식품불안정률이 기존보다 5% 포인트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지면 및 디지털 스토리텔링 제작
기획·취재 이슈&탐사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extreme@kmib.co.kr
사진 최종학 선임기자 윤성호 기자, 아시아문화원·박민구 작가 제공
삽화 전진이 기자
디자인&퍼블리싱 정은혜


이슈&탐사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extreme@kmib.co.kr

[빈자의 식탁: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①기초수급자 승원씨의 점심은 매일 설탕국수였다 [이슈&탐사]
▶②라면·빵만 먹은 일주일… “영양뿐 아니라 양도 부족” [이슈&탐사]
▶④컵밥·학식으로 버티는 청춘 “아직 젊으니까” 스스로 위로 [이슈&탐사]
▶⑤텅빈 냉장고·인스턴트 덩그러니… 일기장엔 “한끼만이라도” [이슈&탐사]
▶⑥6평 남짓 가게서 160명분 준비… “계속 운영할수 있을지 걱정” [이슈&탐사]
▶⑦배곯는 식사에 체중 감소·우울감… 양질의 한끼땐 정상수치로 [이슈&탐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