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제주에 산다] 추석 생선을 사다니… 낚시인의 굴욕

박두호 전 언론인


하도리 굴동 골목길에 평소 보지 못하던 차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차 두 대가 겨우 교행할 수 있는 이 골목에 주차선은 없지만 묵시적으로 거주자가 차를 대는 지점이 있고 이웃은 서로 이를 인정하고 지낸다. 그런데 네 자리, 내 자리 없이 차 한 대 지나갈 공간만 겨우 남기고 골목이 다 차버렸다. 추석 전날이다. 코로나19 4단계라 이 정도에 그쳤단다.

옆집 김씨네 집은 마당에 차를 세 대 세울 수 있다. 목수라서 다 낡기는 했지만 SUV 한 대, 화물차 두 대를 갖고 있다. 이날은 마당에 차가 한 대도 안 보인다. 자기가 타고 다니는 SUV도 밖에 세웠다. 저녁이 되니 못 보던 승용차 세 대가 그 마당에 들어왔다. 시내에 사는 동생과 다른 친척들이 타고 온 차다. 지난 설에도 그랬고 그전 추석에도 그랬다. 그들이 세울 자리를 대비해 미리 자기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저녁에 과일 한 상자 들고 정씨네로 갔다. 이주민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 음식 마련에 분주하던 아주머니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기름떡, 소라젓을 듬뿍 싸주었다. 고팡(작은 창고)에는 구운 생선과 쇠고기, 돼지고기, 메밀묵 등으로 만든 적과 갖은 나물 등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 내일 제사상에 올라가겠지. 정씨는 그날 부산에서 온 동생에게 적을 만들라 시키고 자기는 밭에 나가 일했다고 푸념했는데 열심히 일했다는 자랑으로 들렸다. 꼬치에 고기를 꿰는 적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만든다. 고기를 만지는 일이라 남자들이 하게 됐지만 그래서 각이 잘 나온다.

큰집인데 제사에 삼촌이나 사촌들이 오지 않냐니까 요즘은 추석에 각자 집에서 직계 조상만 모신다고 한다. 추석 즈음에는 농사가 바빠 얼마 전부터인가 간소화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그래도 설에는 모두 모인다.

추석날 낮 김씨가 제사를 마친 듯 음복주 한잔하러 오란다. 전에 김씨 부친 제사에 ‘식게’ 먹는다며 찾아가 상을 받은 적이 있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제주도에서는 제사 때 이웃과 음식을 나눴다. 그걸 식게(제사) 먹는다고 한다. 나는 그때 제주도 시골의 제사 관습이 궁금해 일부러 찾아갔었다. 이날은 나도 식구들과 함께 있어 못 갔다. 잠시 뒤 아주머니가 생선구이 한 마리, 쇠고기적, 아직 따뜻한 미역국 한 냄비를 싸들고 왔다. 이주민 과일 한 상자와는 도대체 비교가 되지 않게 정이 넘친다.

저 생선의 사연을 나는 안다. 김씨는 추석상에 올릴 생선을 올해 처음 시장에서 샀단다. 태풍 찬투가 지난 7일 발생해 대만 타이베이를 지나 중국 상하이 부근에 머물다 17일 제주도 남부를 통과하기까지 열흘 정도 제주 바다에 영향을 미쳤다. 태풍은 지나고도 뒤끝이 며칠 간다. 명절이나 제사 때 남자들은 제수를 마련한답시고 집안일은 팽개치고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나간다. 올해는 추석을 앞두고 태풍 탓에 아무도 바다에 나가지 못했다. 생선을 미리 냉장고에 쟁여둔 사람 말고는 시장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하도리 낚시인들의 굴욕으로 기록됐다.

박두호 전 언론인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