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과잉 능력주의’

[책과 길] 한국의 능력주의
박권일 지음, 이데아
344쪽, 1만8000원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박권일은 능력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하는 능력주의가 한국인의 이데올로기가 됐다고 보고, 능력주의의 과잉이 한국의 극심한 불평등과 민주주의 지체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탐구한다. 게티이미지 제공

능력주의(meritocracy)는 능력에 따른 차별이 공정하다는 생각을 말한다. 얼핏 보면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써보자. “세습, 상속과 같은 ‘외부효과’가 배제된 상태에서 개인의 재능, 노력, 기여의 기준에 의해 사회적 자원(지위와 부 등)이 비례적·차등적으로 분배돼야 한다.”

능력주의가 성립하려면 세습이나 상속과 같은 외부효과가 배제된 상태에서 개인의 능력이 측정돼야 하며, 재능 노력 기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 차등 분배에서 비례가 정확하게 지켜져야 한다.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박권일은 이 세 가지 전제 조건 중 어떤 것도 정확하게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능력주의 자체가 허구라고 본다. 분배의 기준으로 가장 공정해 보이는 노력조차도 객관적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 난점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산출한 어떤 것을 모두 마땅히 받으려면, 그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참된 노력을 통해 산출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자신만의 노력으로 결과물을 산출하는 경우는 없다. 특히 오늘날 부의 압도적 원천은 지식인데, 지식을 인류의 공동자산으로 바라볼 경우 개인의 기여라는 측면, 응분의 몫이라는 관념은 설 자리가 거의 없다.

더 큰 문제는 승자독식의 분배다. 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걸 갖는다. 한국에서 능력을 판정하는 기준은 주로 시험인데, 시험을 통과한 소수에게 특권을 몰아주고 나머지는 모두 패배자가 된다. 이런 식의 분배는 능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특권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고, 특권에 접근할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서만 분노하는 게 현실이다.

‘88만원 세대’ 공저자로 유명한 사회비평가 박권일은 한국인의 마음에 깊게 자리 잡은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해부한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 비해 비판의 범위가 넓다. 특히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한국의 극심한 불평등과 민주주의 정체의 원인으로 보고 그 연관성을 탐구한 점은 흥미롭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모두 성취했을 뿐 아니라 부패한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켰을 정도로 정의로운 시민들이, 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집단행동에는 잘 나서지 않을까.”


박권일은 한국인들이 능력주의를 사회의 철칙으로 맹신하는 것이 불평등에 눈을 감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세계가치관조사’를 인용한다. 미국의 두 정치학자가 주도하는 이 조사는 1981년부터 2020년까지 40년간 계속돼 총 7차까지 진행됐다.

조사 문항 중 ‘소득이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노력 등에 따라) 더 차이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6차 세계가치관조사(2010∼2014년) 결과를 보면 중국은 평등 52.7%, 불평등 25.8%로 평등 쪽이 높았다. 일본은 평등 28.6%, 불평등 25.1%로 양쪽이 비슷했다. 독일은 평등 57.7%, 불평등 14.6%였다. 능력주의의 나라 미국은 평등 29.6%, 불평등 36.2%였다.

한국은 이 항목에서 경이로운 수치를 보여준다. 평등에 찬성한 비율이 23.5%였고, 불평등에 찬성한 비율은 58.7%였다. 최근 조사인 7차 자료(2017∼2020년)에서는 더 놀라게 된다. 한국인의 64.8%가 불평등에 찬성했고, 12.4%만 평등에 찬성했다.

저자는 불평등에 대한 한국인들의 압도적 찬성 여론에 대해 능력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등을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당연시함으로써 불평등을 재생산한다”면서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고 비판했다.

저자는 이어 한국의 민주주의 정체가 능력주의와 연결된 현상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룬 후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2002년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의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이래 지속되고 있다.

박권일은 세계가치관조사 결과를 다시 인용한다. 세계가치관조사의 ‘자기표현 가치’ 지표는 생태환경, 성평등, 동성애자, 장애인 등에 대한 관용성 수준을 측정하는데 한국은 서구 선진국들과 비교해 이 지표가 유독 낮다. 2020년에는 중국과 대만마저 한국을 추월했다. 특히 ‘자녀에게 관용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설문 문항에선 한국인 응답이 45.3%로 조사 대상 52개국 중 꼴찌로 나타났다. 르완다(56.4%)보다 낮았다.

저자는 형식적 민주주의 의제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하던 한국의 대중 저항이 실질적 민주주의와 직결된 경제민주화, 소수자 권리 의제 등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관용성의 부족에서 찾는다. 보통 잘살게 되면 사회의 관대함도 같이 증가하는데 한국 사회는 경제 수준이 아무리 올라가도 사회적 신뢰나 관용이 나아지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두 나라 사이에는 강한 능력주의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심화 사이에 문화변동(대중의 가치관 변화)이 매개변수로 작용한다.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가 지체하고 있는 현 상황은 한국인의 가치관이 유의미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며 “능력주의 원칙, 즉 불평등에 대한 강한 선호는 민주주의의 심화, 특히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일정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책은 한국이 ‘과잉 능력주의’ 사회임을 알려준다. 능력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한 결과 “격차와 불평등을 동력 삼아 모두가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사회” “격차와 특권을 당연시하는 제도와 문화가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능력주의는 정의를 가장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며, 차별과 혐오의 죄의식마저 경감시킨다.

박권일은 능력주의를 화석연료에 비유하면서 “한때 그것은 성장의 필수 연료로 각광받았지만, 오늘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족쇄가 되었다”고 본다. 그가 제시하는 능력주의의 대안은 특권의 해소다. 능력에 따른 보상의 격차를 지금보다 대폭 줄이는 게 주된 방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