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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국적 조바심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할 때가 있다. 우연히 초대받은 모임이라거나 게스트하우스 파티 자리 등등. 대화의 시작은 보통 서로의 출신지를 묻는 말이기 마련이다. 내가 “코리아”라고 말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이 북인지 남인지를 물었다. 내가 남(South)이라고 답해도 북과 남 중 어느 쪽이 민주주의 국가인지 헷갈린 어떤 사람은 깜짝 놀라며 이렇게 물었다. “너 어떻게 외국 여행을 하고 있니? 너의 부모가 고위 관료니?” 국적을 밝히면 이렇게 늘 말이 길어졌다.

한국은 어떤 언어를 쓰니? 중국어? 일본어? 하는 질문도 받아봤다. 한국말 쓴다고 하자 상대방은 다소 머쓱해했다. 나는 지니고 다니던 노트나 책을 보여주며 한글이라는 우리만의 글자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많은 사람이 도형과 직선이 정갈히 쌓인 이 낯선 글자를 신기해하며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 달라고 부탁했다. 각국 날씨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가면 나는 추위와 더위 이야기 모두에 맞장구를 칠 수 있었다. 우리는 영하 10도에서 영상 30도까지 오가는 박진감 넘치는 날씨 속에서 사니까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물었다. “오, 한국에도 겨울이 있어? 너도 눈을 본 적이 있니?” 아마도 그는 한국을 동남아시아 국가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면 또 설명을 해야 했다. 우리나라 위치와 변화무쌍한 기후에 대해.

각국 대표 음식에 대해서도 곧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당연히 김치를 꺼내 들었는데 김치가 뭐냐는 질문도 종종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절인 배추, 고춧가루를 곁들인, 이라고 답했는데 너무 신통치 않은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상대가 “아, 피클?” 하면 “음, 그것과는 다른데”라고 웅얼거렸다. 피클이라니, 김치가 너무 평범해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에는 김치의 전통과 발효과학에 대한 정보, 배추김치나 총각김치 등의 종류, 김치를 활용한 온갖 요리가 떠올랐지만 외국어가 짧아 또다시 한만 품어야 했다.

이따금 이런 생각을 했다. 중국인에게 ‘중국인은 무슨 언어를 써?’라고 묻는 사람이 없고, 미국인에게 ‘미국은 열대 국가야?’라고 묻는 사람이 없고, 이탈리아인에게 ‘파스타는 어떤 음식이야?’라고 묻는 사람이 없는데 왜 나는 이렇게 늘 설명이 길어져야 할까. 말이 짧아 돌아서서 답답해하기만 해야 할까. 역시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방법뿐인가.

이 글을 읽으며 누군가는 ‘저거 언제 적 이야기야?’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그렇다. 저것은 모두 오래전의 이야기다. K팝이나 K푸드 등 다양한 K컬처가 세계에 퍼져나가는 요즘은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떡볶이 먹방을 하고 손가락 하트를 하고 아이돌을 보며 언니! 혹은 오빠! 라고 외친다. 많은 나라에서 김치를 먹고 태권도를 하고 한국 영화를 본다. 이 변화가 작년 다르고 올해 달라서 신기하다. 팬데믹 시대 고국에만 갇혀 있기 아쉬울 만큼 말이다.

비록 지금은 어디도 갈 수 없는 처지지만, 언젠가 다시 외국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때 나의 대화 양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아마 나는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말을 덜 해도 될 것이다. ‘나에게도 모국어가 있고 우리만 쓰는 글자도 있다’거나 ‘김치는 한국인의 영혼으로 우리는 그를 위한 가전제품까지 발명했고…’ 운운하는 말들을 생략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 얕잡아 볼까 봐, 내 문화를 우습게 여길까 봐 괜스레 조바심내지 않게 될 것이다.

내가 쓰는 언어 자체도 달라질 것 같다. 나의 외국어 실력은 여전히 부족할지언정 마음은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것 같다. 나를 키워낸 문화가 많은 이가 공유하는 배경 지식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덜 움츠러들게 하고, 덜 부연하게 할 것 같다. 소통에는 상대의 문화를 열심히 익히는 방법만 있다 생각했거늘, 그가 내 세계에 젖어 들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 당당한 언어를 탑재하고 얼른 다시 떠나고 싶다.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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