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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쓰고 한복 입고… 민족의 얼 깃든 ‘예수의 생애’

1953년 제5회 부부전 통해 첫선
주요장면 30점… 교인들 문전성시

김기창이 예수의 일대기를 조선 시대 풍속화처럼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 가운데 ‘아기 예수의 탄생’. 서울미술관 제공

김기창의 독특한 작품 중 하나로 ‘예수의 생애’ 연작도 있다. 그는 40세이던 1953년 서울 화신백화점 갤러리에서 제5회 부부전을 갖고 이 연작을 선보였다. 성화를 보려는 교인들이 몰려 전시장은 매일 초만원을 이뤘다고 한다.

현재 서울미술관 소장품인 ‘예수의 생애’는 김기창과 친분이 있던 미국인 선교사 앤더스 젠슨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젠슨은 “예수는 온 인류의 구세주다. 믿음을 갖기 쉽도록 많은 나라에서 자기들의 모습을 본떠서 그리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도 제각기 다른 모습의 성화가 있다”며 한국의 풍속화로 예수의 생애를 그려볼 것을 권했다. 김기창도 광복 후 마침 “우리 민족의 생활과 정신세계가 담긴 풍속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작품화”하고자 고민하던 차였다.

‘최후의 만찬’. 서울미술관 제공

연작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신약성서의 주요 장면을 30점에 담았다. 수태고지, 아기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산상설교, 오병이어의 기적, 최후의 만찬 등이다. ‘최후의 만찬’에선 갓을 쓴 선비들이 음식이 놓인 상을 빙 둘러싸고 앉아 있는 가운데 예수를 상징하는 선비가 정면을 향해 중앙에 좌정하고 있다. 그의 갓 뒤로는 광배가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풍속화 형식을 차용한 것을 두고 김기창이 처가인 군산에 피난 가 있던 시절에 우연히 본 신윤복의 풍속화 사진에서 영향받았다는 설도 있다. 연작을 두고 서구에서 전래된 성화의 도상을 토착화한 용기 있는 행위라는 상찬도 받았지만, 가난한 목수의 아들인 예수를 양반으로 둔갑시킨 엘리트주의라는 비판도 나왔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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