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미 부스터샷 시작부터 삐걱… 모호한 접종 대상 지침탓 혼선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의 병원에서 23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을 접종받고 있다. 미국에선 백신 부스터샷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접종 대상과 관련한 정부 지침이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해 혼란을 빚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 접종이 본격 시작됐다. 이번 조치는 백신 접종 완료자 중 면역력이 떨어진 노인층이나 기저질환자의 치명률을 낮추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보건기구(WHO)의 백신 불평등 우려를 뒤로 하고 이를 강행,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리 의지를 밝혔다.

그런 부스터샷 정책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지침 마련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이 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렸고,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부스터샷은 백신 미접종자를 향한 대책이 아니어서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한 근본 처방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작부터 흔들리는 부스터샷

‘65세 이상 고령자’, ‘기저질환이 있어 코로나19 감염 시 중증을 앓을 위험이 큰 사람’. 부스터샷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그룹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여기에 ‘직업 또는 기관 환경으로 인해 코로나19 노출 및 전파 위험이 큰 18~64세 성인’을 추가했다. 의료 종사자, 소방관, 경찰, 교사, 어린이집 직원 등 필수 인력과 식품 및 농업 종사자, 제조 노동자, 교정 노동자, 대중교통 종사자, 식료품점 직원 등을 ‘노출 위험도가 높은 직업군’의 구체적 예시로 들었다.

CDC 부스터샷 지침은 16세 이상 모두를 대상으로 넣으려던 화이자 측 요구보다는 축소된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 노출 위험에 대한 기준이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다”는 우려가 크다. 게다가 위험도 판단은 당사자 개인이 내린다. 사실상 백신 접종 자격이 있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부스터샷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부스터샷을 제공하는 대형 약국 체인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CVS는 “화이자 백신을 제공하는 약국 등에서 부스터샷을 제공할 준비가 됐다”면서도 “접종 자격을 갖췄는지는 찾아온 고객이 하는 말에 의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약국 체인인 월그린도 백신 접종 완료자가 직접 추가 접종을 예약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했다. 월그린 부스터샷 접종 예약 사이트에 접속하면 백신 이력 등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이 나온다. 접종 대상인지를 묻는 항목에 ‘코로나19 노출 위험이 크다’는 답변을 선택하면 바로 부스터샷 예약이 가능하다.

현장은 벌써 혼란을 겪고 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코로나19 책임자 클레이 마쉬 박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뉴욕타임스(NYT)에 토로했다. 노스다코타주는 연방정부 지침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부스터샷 접종 시기를 한 주 연기했다.

“바이든, 트럼프처럼 행동”

일부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미 식품의약국(FDA)이나 CDC에 대한 신뢰도를 흔들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것은 팬데믹 끝내는 방법이 아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빗대며 “공중보건기관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전 백신이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FDA 반대에 부딪히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의도적으로 승인을 늦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관과 백신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는데, 바이든 대통령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FDA가 백신 평가를 완료하기 훨씬 전부터 부스터샷 제공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 반발해 FDA 소속 전문가 2명이 사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부스터샷을 제공하겠다고 말했지만, FDA와 CDC 수장은 데이터 확보 및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며 화이자만 승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성인 누구나 부스터샷을 접종할 수 있다”고 언급한 대목에 대해서도 FDA와 CDC는 “고위험군만 필요하다. 모두 접종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의 부스터샷 정책은 과학을 앞서나갔다”고 지적했다.

공중보건에 대한 정치 개입이 백신 신뢰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우려도 있다. 메건 래니 브라운대 공중보건학과 부학장은 “부스터샷 자격을 대다수 인구로 확대한 것은 백신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또 아직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3차 접종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백신을 꺼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 대책 아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는 최근 일주일 하루 평균 2062명으로 2주 전보다 26% 증가했다. 사망자 증가는 백신 접종률이 낮은 곳에서 두드러졌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아이다호주에서는 사망자가 치솟으면서 영안실 부족 사태까지 겪고 있다. 클로버데일 장례식장 관리자인 데이브 살로브는 WP와 인터뷰에서 “영안실 수용 용량은 이미 초과했고, 계속 증가하는 시신을 수용하기 위해 임시로 냉장 트레일러도 가져왔다”고 말했다. 아이다호주의 경우 1회 접종자 비율이 47%, 접종 완료자 비율은 41%에 불과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아이다호의 끔찍한 상황은 감염을 억제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소름 끼치는 사례”라며 “9월 이후 급격히 증가한 사망자 대다수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환자”라고 보도했다. 결국 팬데믹 극복의 핵심은 백신 미접종자 수를 줄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확산세가 바이든 대통령의 입지를 더욱 좁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폴리티코는 “미국에서 부스터샷 추진이 백신 효과 약화에 대한 우려만큼이나 글로벌 백신 공급에 대한 우려도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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