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택배 노동자·운동 마니아 괴롭히는 탈장 수술도 로봇이 한다

[첨단 의료현장] 작년 ‘서혜부 탈장’ 환자 4만6150명
별도 공간서 컴퓨터 화면 보며 수술
고환 혈관 손상 등 후유증 감소 효과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계봉현 교수가 탈장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빈센트병원 제공

김모(35)씨는 얼마 전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장에 등록하고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몇 주가 채 되지 않아 오른쪽 사타구니에 혹처럼 불쑥 튀어나온 뭔가를 발견했다. 처음엔 놀랐지만 통증도 없고 누워서 쉬면 혹이 사라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던 중 평소보다 고강도의 운동을 한 뒤 사타구니 혹이 더 커졌고 상체와 다리를 펴지 못할 정도의 통증을 느껴 급히 병원을 찾았다. 진단명은 ‘서혜부(사타구니) 탈장’이었고 로봇 수술을 받고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다.

탈장은 몸 속 장기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조직을 통해 돌출되거나 빠져 나오는 증상이다. 근막과 복벽(복부의 가장 바깥)이 약해져 구멍이 나면서 그 틈으로 장이 밀려 나오는 것이다. 탈장은 신체 어느 곳(사타구니, 대퇴부, 수술 상처, 배꼽 등)에나 생길 수 있으나 사타구니 탈장이 전체의 약 75%를 차지한다. 사타구니는 복벽이 가장 약한 부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혜부 탈장’ 진료 환자는 4만6150명으로 이 가운데 약 89%가 남성이었다. 연령별로는 70대가 24.2%로 가장 많았고 60대(21.7%), 10세 이하(15.8%) 순이었다.

소아 탈장은 대부분 엄마 뱃속에서 선천적 원인에 의해 생긴다. 각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후천적 요인으로 많이 발생하는 성인 탈장이다. 특히 무거운 물건을 자주 드는 작업, 고령(노화), 만성 변비, 만성 기침, 무리한(격렬한) 운동 등은 복벽을 약하게 하거나 과도한 복압 상승을 일으켜 탈장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대장항문외과 계봉현 교수는 27일 “젊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복벽이 튼튼하지만 웨이트트레이닝 같은 큰 힘을 쓰는 운동을 지속하면 복압을 올릴 수 있다. 탈장으로 오는 운동 마니아들이 가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택배 노동자 등 무거운 물건을 자주 들거나 택시 운전사처럼 엑셀이나 브레이크를 밟느라 한쪽으로 힘이 쏠리는 직업군에서도 탈장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콜록콜록할 정도의 깊은 기침을 하거나 화장실에서 힘을 줘야 하는 만성 변비 환자들도 탈장 위험이 높다.

탈장 초기에는 배에 힘을 주거나 무거운 짐을 들면 사타구니 한쪽이 부풀어 오르고 가끔 그 부위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누워 쉬면 괜찮아지거나 탈장 부위를 누르면 제자리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진행되면 탈장 주머니(불룩 튀어나온 혹)가 점점 커지고 빠져나온 장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염증과 유착(조직이 엉겨 붙음)을 유발해 통증을 일으킨다.

계 교수는 “빠져나온 장이 복벽 틈에 끼어버리면 장의 통로가 막히는 장폐색으로 악화돼 장이 썩을 수도 있다”고 했다. 빠져나온 장이 복벽에 끼이면 응급상황으로, 의료진이 손으로 탈출한 장기를 정상 위치로 돌려놓는 치료(도수 정복법)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바로 재발하기 때문에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

사타구니 탈장 환자의 로봇 수술 장면. 수술 도구를 장착한 로봇팔 조정은 별도의 공간에서 의사에 의해 이뤄진다. 성빈센트병원 제공

개복 혹은 복강경 수술이 다 가능하나 최근 여러 방면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로봇 수술이 탈장 치료에도 도입됐다. 로봇 탈장 수술은 미국, 유럽 등에선 보편화됐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몇몇 의료기관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최첨단 로봇장비인 ‘다빈치Xi’가 활용되는데, 8㎜ 정도 구멍 3개를 뚫고 고해상도 카메라와 수술 기구가 장착된 로봇팔을 집어넣어 집도한다. 의사는 별도 공간에서 컴퓨터 화면을 보며 로봇을 움직인다.

기존 복강경 탈장 수술은 장비가 직선으로만 움직이고 카메라 시야가 제한적이라 꿰매는 작업이 어렵고 정교함이 떨어지는 제한점이 있었다. 반면 로봇 탈장 수술은 10배 이상 확대된 3차원의 고화질 입체영상으로 수술 시야가 선명하고 로봇 장비에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회전할 수 있는 관절 기능이 있어 기존 방법보다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다. 또 (의사)손 떨림 보정 장치가 있어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도 안정적이고 세밀한 수술을 할 수 있다.

계 교수는 “수술 과정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정관이나 신경, 고환 혈관 손상 등 후유증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며 작은 구멍 몇 개를 이용하므로 수술 후 통증이 적고 회복도 빨라 환자 만족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로봇 수술의 경우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양쪽 사타구니 내부 상태를 모두 관찰 가능하고 증상이 없어 진단되지 않았던 반대편 탈장까지 찾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환자 입장에선 한 번의 수술로 재발 확률을 낮추고 추후 반대편의 탈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단 어린이 탈장은 로봇 수술이 적용되지 않는다. 인공막 등을 이용해 복벽을 단단하게 보강해야 하는 성인 탈장과 달리 선천성 소아 탈장은 탈장 구멍을 실로 묶어 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성인이라도 장이나 배 안(복강) 수술 경험이 있으면 로봇 수술은 권고되지 않는다. 계 교수는 “탈장이 많이 진행돼 고환까지 내려오거나 유착이 심해 재발 위험이 높은 고난도 수술에 로봇이 큰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