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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칼럼] 새 권력의 칼바람을 막으려면


한 편의 무협지 같은 대선판, 차기 권력이 등장한 이후엔 봄바람 아닌 칼바람 불 수도, 독점된 정의는 독재로 변할 우려
민주주의라는 옷만 걸친 사회…. 중간층, 마음 둘 곳 없는 정치, 달콤한 공약은 독버섯과 같아, 하늘의 별 따주겠다는 언약은 정치인 아닌 연인만으로 족해

대선판이 난장판이다. 화천대유니 천화동인이니 하는 말까지 더해지니, 마치 한 편의 무협지를 보는 듯하다. 여기에 전직 대법관과 검사장이 이름을 올리더니 유력 정치인도 등장했다. 심한 악취가 난다. 해명도 유치하다. 우리 선거가 언제 그러지 않은 때가 있었겠냐만 그 정도가 위험스럽다. 항간에서 새 권력이 결정되는 내년 3월 봄바람이 아니라 칼바람이 휘몰아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혹자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의 폐해라며 제도 탓을 한다. 동의할 수 없다. 제도를 만든 것도 사람이고, 운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정치판이 딱 그렇다. 입속에 날카로운 칼을 머금고 상대를 공격한다. 여권이나 야권이나 오십보백보다. 심지어 검증의 이름으로 치마 속을 들춘다. 민망하다. 민주주의라는 옷을 걸치고 있을 뿐 결코 민주적이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다. 관용과 포용을 말하면서도 행동은 배타와 적개심만 가득하다. 이미 가슴속에 분노와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지난 5년간 적폐 청산의 이름으로 난도질이 가해지면서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졌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누굴 탓하겠는가. 국민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었던가.

언론계도 다르지 않다. 짐짓 진보 또는 보수인 양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관변언론과 반문언론으로 나뉘어 덩달아 깨춤을 춘다. 우리(나)는 옳고, 상대(너)는 틀렸다거나 수꼴좌파니 보수꼴통이니 하는 이분법적 인식은 진실을 희생시킨다. 물론 겉으론 정의와 진실을 내세운다. 하지만 내가 믿는 진실만 진실이고, 내가 인정하는 정의만 정의라고 우긴다. 독점된 정의는 독재로 흐를 위험성이 높고, 독점된 진실은 독선의 덫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게다.

다시 대선 문제로 돌아가 보자. 공약은 달콤하다. 아이 낳으면 돈 주고, 키우면 돈 주고, 학교는 물론 병원도 ‘공짜’로 보내준다.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도, 청년들에게도, 노인들에게도 돈을 주겠단다. 지상낙원에 가까운 아무 말 대잔치다. 복지 공약만 그런 게 아니다. 하늘의 별을 따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연인으로 족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외교·안보 공약은 잘 안 보인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고, 더욱이 ‘매표’를 하기엔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여전히 살얼음판 같은 남북대결 양상을 감안하면 그 어떤 과제보다 리더의 혜안과 외로운 결단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은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데 정작 국민들은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단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조사해 17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호감도 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 등 이른바 빅4 모두 ‘호감’보다 ‘비호감’이 훨씬 많았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하다. 중간층은 늘어나는데, 마음 둘 곳이 없다는 방증이다. 현재 상황에선 누가 국민의 선택을 받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달리 말하면 나라를 맡길 만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후보마다 공약이 비슷비슷해 공약 보고 대통령을 제대로 선택하는 것은 난수표를 해독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무릇 현란함에는 속임수가 있다. 독버섯이 화려한 것처럼 겉이 번지르르하거나, 속이 복잡한 것엔 대개 함정이 있다. 달콤함은 순간이지만 결국 이빨 썩게 하고 종국엔 단맛, 쓴맛 가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객관화되지 않은 섣부른 낙관론을 제시하거나 화려한 공약으로 표를 얻겠다면 독버섯과 무엇이 다른가.

일찍이 경험한 바이지만 공약 보고 후보 선택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대권 도전에 나선 후보들이 국민의 기본적 삶과 원초적 행복을 책임지겠다는 걸 비난하는 게 아니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게 아니라면 장밋빛 공약을 강행할 경우 누군가는 빚을 지게 된다. 공약대로 될 가능성도 희박하겠지만 그들 역시 지킬 의지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다행이다. 만에 하나 공약을 강행한다면 나라 살림은 파탄 날 것이 뻔하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지만….

경고하건대 정치인의 호기는 선거, 즉 유권자 투표로 완성된다. 현실성 없는 공약, 네거티브 전략이 먹힌다 싶으면 구호 소리는 커지고, 과격해진다. 대통령이 되려면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지만 권력의지만 있는 경우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불과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선택도, 책임도 오롯이 국민 몫이다.

박현동 편집인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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