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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CCM가수 선교사… 다음세대 양육에 쓰임받길”

‘1인 4역’ 이사무엘 목사의 사명

이사무엘 목사가 27일 인천 서구 인천수정비전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영어찬양 ‘홀리 로드’를 부르고 있다. 인천=강민석 선임기자

27일 오후 인천 서구 인천수정비전학교. 초등학교 6학년 교사인 이사무엘(41) 목사가 기타를 치며 영어찬양을 하자 학생이 몰려들었다. “시련과 고난이 있을 때, 너는 늘 기억해.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이사무엘, 브이언 사우 작사·작곡 ‘홀리 로드’)

이 목사는 1990년 미국 뉴욕에 이민을 갔다. 부모는 이민자의 고단한 삶을 살았다. 정체성 혼란과 언어장벽으로 고생하던 중학생 소년에게 예수님이 찾아왔다. “뉴욕 퀸스에서 ‘코리안 크리스천 펠로십’이라는 전도 행사가 열렸는데,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어요.”

그때부터 중학교 기독교 동아리에 나갔고 98년 뉴욕주립대 입학 후 뉴욕 에벤에셀선교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2004년 9·11사태 3주년 때는 거리에서 기타를 둘러메고 찬양을 하며 테러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 기부금을 모았다. 3개월간 맨해튼을 걸으며 ‘소망의 지도’도 직접 만들어 판매수익을 구호단체에 전달했다.

이 목사는 2004년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시설인 ‘헤밀튼 메디슨 하우스’에서 일했다.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 목사는 “갑자기 머리를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 있었고 기억력도 급격히 떨어졌다”면서 “2006년 한국에 와서 침까지 맞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가서 ‘낫게만 해주시면 주님 일을 하겠다’고 서원했다”고 회고했다.

기도원에서 생면부지의 성도가 “이사야서 58장을 꼭 읽어보라”고 했다. 이 목사는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이제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킬 때가 됐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2007년 뉴욕 프라미스교회 내 복음주의신학교에 입학했다”면서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받으면서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중추신경계 탈수초질환이었다”고 설명했다.

2011년 필리핀에서 과외교사, 대기업 통역 등으로 일하며 현지 리더를 키웠다. 빈민선교를 하며 찬양팀 ‘더 다니엘스’를 만들어 음반을 냈다. 2019년 필리핀 아시아침례교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9년 10월 자녀 출산 때문에 한국에 정착한 그에게 또 다른 사역이 열렸다. 대안학교 교사였다. 그는 박봉에도 학생들의 생일, 종업식, 졸업식 때 손편지를 쓰고 플래카드와 선물을 직접 만든다. 이 목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복음의 빚진 자라는 사도바울의 마음을 주셨다”면서 “하나님의 애틋한 심정, 친구 되신 예수님을 어떻게라도 알리고 싶다. 그냥 뭐든지 주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웃었다. 그는 지금도 줌으로 필리핀 사역자 10여명을 양육한다.

목사, 교사, 싱어송라이터, 선교사인 그에게 어떤 사역이 가장 보람될까. “물론 교사죠. 이곳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볼수록 한 영혼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늘 고민해요. 성경은 하나님께 인도하는 사람을 교사라고 합니다. 기성세대에 맡겨진 사명은 다음세대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 아닐까요.”



인천=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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