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들


아브람의 집에서 쫓겨난 하갈이 수르로 가는 길가에 있던 샘에 잠시 머물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묻는다.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하여 나오는 길입니다.” 단순한 문답이다. 하갈은 ‘어디서 와서’라는 질문에는 답하고 있지만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정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천사는 여주인에게 돌아가 복종하며 살라고 말한다.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라는 지시처럼 난감한 게 또 있을까. 망설이는 하갈에게 천사는 예기치 않은 말을 한다.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자손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겠다.” 천사는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고 이른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이들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다.

천사는 하갈에게 “너의 아들은 들나귀처럼 될 것”이고 “모든 사람과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얼핏 보면 저주의 말처럼 들리지만 이 말 속에는 강력한 격려가 담겨 있다. 시간 속을 바장이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는 불안이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건강한 삶이란 시련과 고통 없는 삶이 아니라, 어떤 시련이 오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되는 데 있다. ‘너의 아들은 들나귀처럼 될 것’이라는 말은 혹독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강인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하갈은 감동한다. 그리고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엘 로이’, 즉 ‘보시는 하나님’이라 명명한다. 하갈이 서 있던 샘은 ‘브엘라해로이’ 즉 ‘나를 보시는 살아 계시는 분의 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가슴에는 멍이 가실 날이 없다. 세상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과 무관한 것은 없다. 온 세상이 그분의 몸이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의 장소여야 하는 일터에서 느닷없이 목숨을 잃거나 재해를 입는 이들, 난민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이들, 존엄을 박탈당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은 아파하신다. 인간 탐욕으로 신음하고 있는 피조 세계 때문에 하나님은 쉬실 수 없다.

미국 하버드대 새러 로이 교수의 글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는 나치 수용소에서 생환한 아버지의 팔에 새겨진 푸른색 번호를 보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 나라 없이 떠도는 이들의 설움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여러 해 전 그는 ‘점령’의 현실이 점령지 사람들의 경제 일상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땅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못한 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했다.

어느 날 일단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이 지긋한 팔레스타인 사람을 조롱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서너 살쯤 된 손자와 함께 당나귀를 끌고 가던 노인을 불러 세웠다. 군인들은 당나귀에 실린 짐을 검사한 후 당나귀 입을 벌려보며 말했다. “당나귀 이가 왜 누래? 날마다 닦아주지 않나 보지?” 노인은 당황했고 아이는 겁에 질렸다. 노인이 침묵하자 군인들은 큰소리를 지르며 대답하라고 윽박질렀다. 다른 군인들은 야비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노인은 굴욕을 당하면서도 가만히 서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 군인은 노인에게 당나귀 뒤에 서게 한 후 당나귀 엉덩이에 입을 맞추라고 지시했다. 노인은 거절했지만 강압에 못 이겨 마침내 고개를 숙이고는 당나귀 엉덩이에 입을 맞췄다. 군인들은 그 광경을 보며 웃으며 사라졌다.

이런 일은 형태만 다를 뿐 세상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를 모욕하고 수치심을 안겨줌으로 자기의 우월적 지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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