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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하피첩, 아버지의 길

김의구 논설위원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돼 있던 다산 정약용은 1810년 서첩 4권을 경기도 남양주 마현의 집으로 부쳤다. 아내 홍씨부인이 시집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 5폭을 보내주자 마름질하고 종이를 덧댄 다음 직접 글씨를 썼다. 다산은 서문에 “두 아들에게 경계하는 구절을 지어 써준다. 부디 부모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 평생 가슴속에 새기거라”라고 적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하피첩이다.

‘공경의 마음을 곧게 세우고(敬直), 의리를 반듯하게 만들라(義方).’ 하피첩에는 선비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이 담겼다. ‘재화를 감춰두는 방법으로는 남에게 베푸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도둑에게 빼앗길 걱정이 없고 불에 탈 염려가 없으며 소나 말이 옮길 수고로움도 없이 죽은 뒤에도 천 년 동안 아름다운 이름을 전할 수 있으니 천하에 이보다 큰 이득이 있겠느냐?’는 등의 다산의 재물관과 사회의식도 나타난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하피첩 내용이 다산문집에 실려 있는 ‘가계(家誡·가정의 계율)’의 내용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아버지의 뜻대로 자식들은 훌륭하게 장성했다. 큰아들 학연은 종7품 관직을 얻었다. 둘째 아들 학유는 노랫말로 농업기술의 보급을 도모한 농가월령가를 썼다. 애틋한 부부의 정을 실어 보낸 치마 위에 곧게 자식을 기르려는 아버지의 의지를 덧붙인 뜻을 자녀들도 이해했음일 것이다.

화천대유에서 아들이 받은 50억원 퇴직금 논란 등으로 곽상도 의원이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박영수 전 특검은 딸이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받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자녀의 책임을 부모에게 묻는 건 연좌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은 가볍지 않다.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평생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라는 하피첩 구절이 새삼스럽다. 치부의 길을 열어주고 스펙을 부풀려주는 것보다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엄한 스승의 역할도 부모에게는 필요하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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