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새롭네… 대선 혀투

[커버스토리] 정치권 ‘조어 전쟁’ 가열

게티이미지뱅크

대선 정국의 정치권에서 ‘조어 전쟁’이 한창이다. 각 후보들은 서너 글자로 이뤄진 짧은 단어에 자신의 강점을 응축시키려고 애쓴다. 또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조어를 활용하기도 한다. 조어를 통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임팩트 있는 조어는 열혈 지지층을 넘어 부동층의 눈길까지 사로잡는 대박을 터트리기도 한다.

대세론·네거티브 전천후 활용

지난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은 대선 조어의 원조격이다. 유력 주자들의 지지층은 저마다 ‘어대문’을 차용한 조어를 만들어 유포하고 있다. 대세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의도다. 더불어민주당의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국민의힘의 ‘어대윤’(어차피 대통령은 윤석열), ‘무야홍’(무조건 야권후보는 홍준표)이 대표적 사례다. 대세론을 굳히려는 후보들이 이런 유형의 조어를 선호하는 것이 특징이다.

네거티브성 조어 역시 많이 활용된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층이 당내 경쟁자인 홍준표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홍찍명’(홍준표 찍으면 이재명이 된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견제하려 만든 ‘윤나땡’(윤석열이 나오면 땡큐)과 ‘홍나땡’(홍준표가 나오면 땡큐)이 대표적이다. 네거티브성 조어는 상대 후보에 대한 비토 정서를 부추기는 데 효과적이다.

홍 의원은 윤 전 총장의 조국 수사가 과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가 ‘조국수홍’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곤욕을 치렀다. ‘조국수홍’ 논란이 확산되자 홍 의원은 “조국수홍의 조자가 조상 조(祖) 자다. 내 나라를 수호하는 홍준표라는 뜻”이라며 직접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윤 전 총장에게 붙은 ‘윤돌핀’(윤석열+돌고래, 경쟁주자 대비 체급이 크다는 뜻)은 긍정·부정적인 의미가 모두 섞여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윤 전 총장을 돌고래에, 다른 주자들을 멸치와 고등어에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 윤 전 총장 측은 최근 친근함을 강조하기 위해 ‘석열이형’을 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연합뉴스

대결·우호구도, 고유브랜드 함축

정치적 표적을 직접 겨냥한 조어도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꿩 잡는 매’(윤석열 잡는 추미애)를 자처했다. ‘추·윤 갈등’ 이후 윤 전 총장과의 갈등 구도를 부각시켜 자신의 체급을 높이겠다는 포석이다.

정치적 우호관계를 과시하는 조어도 눈길을 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 ‘이니’를 본뜬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의 별명 ‘여니’가 대표적이다. 이 전 대표의 지지자들은 ‘문을 여니 조국이 보인다’라는 조어로 문 대통령과 이 전 대표, 조 전 장관을 함께 엮기도 했다. 과묵한 이 전 대표도 온라인상에서는 ‘여니’라는 닉네임을 직접 사용하기도 한다.

브랜드화에 성공한 별칭도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를 상징하는 ‘사이다’(이재명 경기지사)와 ‘홍카콜라’(홍준표+코카콜라)는 인지도가 높다. 두 주자의 시원한 화법과 추진력을 탄산음료에 비유한 별명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치타처럼 지지율이 빠르게 오를 것이라는 뜻에서 지지자들에게 ‘유치타’로 불린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자신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면 민주당에는 재앙일 것이란 의미에서 ‘귤재앙’이라는 조어를 만들었다.

열혈지지층·MZ세대 열광

게티이미지

정치권의 조어는 열혈 지지층에 크게 의존한다. 새로운 조어가 만들어지면 열혈 지지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 실어나르며 확산시키는 구조다. 추 전 장관의 지지자들은 음료수 ‘미에로화이바’를 패러디해 만든 ‘미애로 합의봐’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큰 인기를 얻었다.

홍 의원의 ‘무야홍’은 최근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박을 터트렸다는 평가다. 온라인에서 신난다는 의미로 쓰이던 유행어 ‘무야호’를 익살스럽게 패러디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조어 열풍에는 정치를 하나의 놀이처럼 즐기는 MZ세대의 특징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내년 3월 대선에서 2030세대 표심이 판세를 가를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각 후보들이 신선하고 유쾌한 느낌의 이미지 메이킹에 나서는 이유다. 민주당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유치하다며 무시했을 말들이 요즘 젊은층 사이에선 B급 감성이라는 이유로 더 잘 먹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치인들도 조어 열풍에 올라타고 있다. 무야홍이 인기를 끌자 홍준표 의원은 경선 첫 TV토론회에서 자신을 “무야홍”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이 지사 캠프 측에서는 “홍준표 후보에게 가장 어울리는 게 연산군”이라며 “연산홍으로 불러주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잘하면 촌철살인, 과하면 거부감”

대선 주자가 직접 조어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최근 “김빠진 사이다 이재명 후보는 홍준표 후보를 제대로 못 잡는다”라며 ‘심잡홍’(심상정이 잡는다 홍준표)을 띄웠다. 이 지사 캠프가 앞세운 캐치프레이즈인 ‘이재명은 합니다’ 역시 이 지사의 추진력을 부각한 문구다.

2017년 대선에서도 조어 경쟁은 치열했다. 당시 여론조사 우위를 달렸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 측은 ‘어대문’에 이어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대문’(투표해야 대통령은 문재인)을 만들었다.

정치권의 조어 열풍과는 달리 정작 표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일 “정치적 관심이 높은 일부 팬클럽 수준의 열혈 지지자들의 문화일 뿐, 이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표심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말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하는 촌철살인식의 조어라면 마케팅 효과가 크겠지만, 조어가 범람하거나 작위적으로 만든 티가 나면 금세 일반 유권자의 피로감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적 의미를 잘 담은 조어는 후보에게 보약이 되겠지만, 어설픈 조어는 오히려 독약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오주환 강보현 기자 johnn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