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잡일은 그만!… 이제 동물보건사로 전문성 갖춘다

내년 3월 국가 자격 검증 ‘첫선’
청년 고용증대 효과 4.6% 예상
불법 의료행위 등 부작용 우려


동물병원에 들어서면 익숙한 풍경을 마주한다. 진료·치료를 담당하는 수의사와 함께 간호사 격으로 보이는 보조 인력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다니는 병원이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문 자격인 간호사와 달리 동물병원의 보조 인력은 별다른 자격 요건이 없다.

좋게 말하면 취업 장벽이 낮지만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가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병원 내 청소나 먹이주기, 전화 상담 정도 외에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 때로는 보조 인력의 무지가 의료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급여도 그리 많지 않다. 동물이 좋아서 동물병원에 취업했지만 직장을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박천식 아크리스동물병원장은 “업무에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 보니 어느 정도 일하다가 퇴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이 내년부터는 바뀐다. 동물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자격인 ‘동물보건사’가 생긴다. 미국 등 반려동물 문화가 성숙한 국가에서 수의테크니션으로 불리는 전문 인력이 한국에서도 제도화되는 것이다. 반려동물 관련 학과를 나온 이들에게는 새로운 취업문이 열리며 청년 일자리가 확대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동물병원도 더욱 개선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익 증대 효과를 누릴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동물복지사 자격이 생기면 수의사의 손을 거치지 않는 불법 치료 행위가 빈번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제기된다.

내년 3월, 동물보건사 첫선

동물보건사 제도는 동물의료 전문인력 육성과 진료서비스 발전을 위해 도입됐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가구의 15.0%인 312만9000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울 정도로 반려인구가 늘었다. 그만큼 수준 높은 동물의료의 필요성이 커졌다. 지난 8일 개정 수의사법 시행령·시행규칙이 공포되면서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길이 열렸다. 내년 2월 실시되는 첫 시험에 통과하면 3월에 동물보건사 국가자격이 주어진다. 기초·예방·임상 동물보건학과 동물 보건·윤리 및 복지 관련 법규 등 4개 과목을 통해 자격을 검증하기로 했다.

자격을 갖춘 이들은 동물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 체온·심박수 등 기초 검진자료의 수집이나 반려동물 요양 간호 등을 정식으로 수행할 수 있다. 반려동물의 입을 통한 약물 투여, 마취·수술 보조 등도 수의사 지도 아래 가능하다. 전문적인 동물간호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체계적으로 반려동물 관련 공부를 한 이들에게는 희소식이다. 경기도 안양의 연성대 반려동물과를 다니는 정희라(20·여)씨는 “반려동물과를 다니면서도 (취업과 관련해) 불안하기는 했는데 동물보건사가 생기면 도움이 많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청년 고용증대 효과로 이어질까

새로운 자격이 생긴다고 해도 동물병원이 동물보건사를 의무 고용해야 할 강제성은 없다. 때문에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보건사 일자리가 생길지 예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동물보건사 제도 도입이 고용증대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적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동물보건사 제도 시행의 고용증대 효과는 4.6% 정도로 예상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집계한 동물병원 보조 인력(약 7600명) 규모를 고려하면 최소 300개 이상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20, 30대 청년층 종사자가 많은 특성상 대부분의 신규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가 될 개연성이 있다. 이외에도 동물보건사 교육훈련 시장 확대와 같은 부수적 효과도 기대된다.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나는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일자리는 더욱 증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해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전체 가구의 68.0%인 8250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미국의 경우 동물보건사 격인 수의테크니션 일자리가 8만개까지 늘었다. 1462만여 가구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일본 역시 동물보건사에 준하는 동물간호사가 2만5000명에 이른다.

두 나라 모두 수의사보다 보조 인력인 동물보건사가 더 많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한국의 수의사 수가 지난해 기준 6796명이라는 점에서 수의사보다 많은 인력 수요가 생길 가능성이 작지 않은 것이다. 박 원장은 “인턴 수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동물보건사의 필요성과 전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국가자격을 보유한 만큼 임금 수준 역시 현재보다 개선될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는다. 허제강 경인여대 펫토탈케어과 교수는 30일 “1회 합격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반려가구 수요에 동물병원이 대응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분별한 의료 행위 우려 목소리도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첫 합격 사례가 현장에 투입되기 전이라 우려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불법 시술이다. 동물보건사 자격을 갖추고 동물병원에서 근무한다 해도 주사를 놓는 행위 등은 할 수 없다.

동물병원 바깥에서 의료 행위를 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현행 수의사법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행위다. 박 원장은 “제재나 벌칙을 보다 강화해 동물병원 바깥에서 동물보건사가 의료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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