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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아버지의 이름으로

김현길 사회부 차장


“MB 주변에는 ‘공정한 사회’에 반하는 인간만 득실거림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실 ‘신하’는 ‘주군’을 보고 따라하는 법이거늘.” 2010년 9월 유명환 외교부 장관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논란이 불거진 후 조국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SNS에 이렇게 일갈했다. 사과한 유 장관을 두고 “파리가 앞발을 비빌 때는 뭔가 빨아 먹을 준비를 할 때이고, 우리는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이다. 퍽”이라고 적었다.

9년 뒤인 2019년 9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기자간담회에서 딸의 입시비리 의혹에 “결과적으로 저희 아이가 합법이라고 해도 혜택을 입은 점에 대해선 제가 반성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합법’이라는 말과 달리 그의 아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1·2심은 관련 의혹을 불법으로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합법일지 아닐지는 대법원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

조 교수 일가 비판에 앞장선 이들 중엔 이제는 무소속이 된 곽상도 의원도 있다. 곽 의원은 2019년 조 교수 딸에 대한 의혹이 나온 초기부터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장학금 지급 의혹 등을 제기했다. 지난달 2일엔 판결문 등을 근거로 조 교수 부부가 직접 위조한 것을 포함해 허위 문서를 22건 이상 만들었다는 주장도 내놨다. 조 교수 딸과 아들의 고려대, 연세대 대학원 입학도 취소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알려진 대로 곽 의원은 조 교수 일가 외에 문재인 대통령 딸과 사위, 아들에 대한 의혹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런 곽 의원도 당분간 자녀 문제를 이유로 누구를 비판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일한 곽 의원 아들이 “입사해서 겨우 250만원 월급”만 받은 게 아니라는 ‘반전’이 드러난 때문이다. 7년간 일하면 퇴직금과 위로금으로 50억원을 받을 수 있는 숨겨진 직장의 연결고리가 곽 의원이었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자녀 문제를 둘러싼 이러한 뫼비우스의 띠는 사실 눈에 익다. 내용에 차이가 있고 불법과 편법으로 따져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가진 아버지나 어머니의 이름이 자녀에게 상식을 벗어난 특혜로 연결되는 틀은 유사하다. 최근 반복되는 ‘공정 이슈’도 한 꺼풀 벗겨 보면 공인이나 유명인 자녀 문제로 수렴하는 경우가 많다. 2030세대가 관련 이슈에 유독 민감한 것도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논란의 당사자들이 보이는 당당함이다. 곽 의원 아들은 아버지 SNS에 올린 해명에서 “수익이 날 수 있도록 저도 회사 직원으로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식이나 코인 같은 것들에 투자하는 것보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오너에게 인정받도록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회사를 다녔습니다”라고 썼다. “제 인생은 제가 선택하고, 제가 책임지고, 제가 그려왔습니다”라고도 했다. 조 교수 딸도 법정에서 “학교 측과 가족이 마련해준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했을 뿐”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진실이 다 가려진 건 아니지만 그들이 얻은 성과에 본인들 노력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았다고 하는 건 가혹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어느 정도 드러난 후 돌이켰을 때 그들의 노력만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자문하는 균형감 정도는 갖춰야 할 것 같다. 곽 의원 아들은 해명의 처음과 끝에서 ‘설계 문제’를 언급했다. 인기 드라마를 염두에 둔 듯 “오징어 게임 속 ‘말’일 뿐”이라고도 했다. 드라마 내용을 감안하면 비유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과 별개로 게임 초대장을 보낸 이가 아버지이고, 남다른 혜택을 받은 입장에서 스스로를 ‘말’로 낮추는 건 비약이 심하다. 그 건너뜀만큼 지켜보는 이의 분노와 상실감도 크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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