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 윤석열의 王

손병호 논설위원


국민의힘 대선 주자 TV토론 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손바닥에 임금 왕(王)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시끄럽다. 주술에 휩싸인 후보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번 일은 과거 노태우 전 대통령의 10원짜리 불상 소문과도 빼닮았다. 1990년대 중반에 한국은행에 청원이 들어왔는데, 1983년 이후 발행된 10원짜리 동전의 다보탑 속에 새겨진 불상을 빼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83년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노태우가 87년 대선을 앞두고 ‘온 가정에 불상이 들어가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무속인 말을 듣고 은행에 압력을 넣어 불상을 새겼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탑 속에 들어간 건 불상이 아니라 돌사자이고, 탑을 제대로 재현하려고 원래 탑 속에 있는 돌사자를 뒤늦게 새겨 넣은 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불상 해프닝과는 달리 윤 전 총장 글씨는 여야 모두에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순실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비판했고,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무속 대통령이 되려고 하느냐”고 공격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과학기술패권 시대에 왕을 뽑겠다는 것이냐. 이번 대선은 과학 대 미신의 대결이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윤 전 총장은 3일 “동네 할머니가 왕과 같은 기세로 자신감 있게 토론하라고 써준 것”이라며 “주술 얘기는 억측”이라고 해명했다.

윤 전 총장이 한 번도 아니고 TV토론 때마다 같은 글씨를 새기고 출연한 건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호의로 써줬다지만 오해를 낳을 만한 글씨인데 후보 본인이나 캠프에서 이를 방치한 건 분명 잘못이다. 왕 글씨가 있으면 토론을 잘 할 것이란 얘기에 글씨를 쓰도록 내버려둔 것 자체가 미신 조장처럼 들린다. 아니면 진짜로 토론에 자신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 화천대유, 천화동인, 봉고파직, 위리안치, ‘가면 찢으면 변학도’에 이어 이번에는 왕이 논란이 됐다. 대선판이 아니라 점점 더 조선시대 사극판이 돼 가는 것 같다.

손병호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