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35년째 새깁니다… 예술이 된 성경필사

한 땀 한 땀 나무판 위에 말씀 수놓는 박형만 작가의 신앙

박형만 작가가 지난달 14일 부산 동구 수정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나무판에 성경 말씀을 필사하고 있다. 그의 성경필사 작품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인다.

멀리서 봤을 땐 하나의 회화 작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림인 줄 알았던 건 글이었다. 작은 글씨가 나무판을 꽉 메우고 있었다. 찬찬히 읽어 보니 성경 말씀이다. 그제야 글 위에 달린 ‘Y’자 모양의 나뭇가지가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십자가였다. 박형만 작가는 나무판 위에 성경 말씀을 적는다. 이렇게 ‘목판 성경필사’를 시작한 지도 벌써 35년이나 됐다. 지난달 14일 부산 동구 수정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난 박 작가는 “늦게 하나님을 만난 만큼 하나님을 잘 알고 싶었다”며 “하나님을 깊이 알고 싶어 필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홍익대 건축과를 졸업한 박 작가는 마흔 넘은 나이에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때부터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했던 박 작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동양철학 등에 심취했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진 못했다. 그러다 기독교인이던 아내의 권유로 교회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답을 찾았다.

성경필사는 성경공부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노트에 성경 말씀을 적었다. 그러던 중 주변에 있던 나무판이 눈에 들어왔다. 박 작가는 “건축 현장 감독 감리를 위해 현장 방문할 때가 많았는데, 그곳에 가니 쓰고 남은 나무가 널려 있더라”며 “원래는 그걸 다 버리는데, 좀 아깝기도 해서 그걸 갖다 좋아하는 말씀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 널브러진 못도 주워 십자가 조형물로 만들었다.

나무에 성경필사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일반 성경필사보다 시간이 많이 들었다. 성경 66권을 필사하려면 하루 4시간씩 작업했을 경우 3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박 작가는 필사 중 오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한 절의 성경필사를 위해 그 구절을 3~4번씩 읽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가장 정신이 맑고 집중력이 좋을 때인 새벽 시간 말씀을 적었다.

사전 작업도 필요했다. 성경필사 중 나무가 모자라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필사하고자 하는 성경 글자 수를 미리 계산해 레이아웃을 잡았다. 박 작가에 따르면 사용할 펜을 결정한 후 필사하려는 성경을 한 페이지 정도 노트에 기록한다. 이후 그 페이지의 글자 수를 세서 ㎠로 환산해 메모해 둔다. 마지막으로 쓰고자 하는 내용이 모두 몇 페이지인지 확인한 후 이전에 환산해 놓은 수를 곱한다. 박 작가는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아주 쉽고, 간단하다”고 웃었다.


박 작가는 성경필사를 3㎜의 아주 작은 글씨로 썼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 손으로 모든 도면을 그렸던 박 작가는 글씨를 작게 써야 보기에 예쁘다고 말했다. 그는 “도면에 들어가는 글씨 정보가 많으면 50개 정도 된다. 이걸 모두 넣기 위해 글씨가 작아진 것도 있지만, 미적인 부분도 고려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목판 성경필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성경 말씀을 한정된 나무에 쓰려다 보니 글씨가 점점 작아진 것도 있지만, 이렇게 작은 글씨로 쓰는 게 더 예뻐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하나 그는 이렇게 작은 글씨로 쓰는 이유에 대해 “글씨를 그림처럼 느껴지게끔 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이를 ‘그림글씨’라고 불렀다. 그는 “글씨는 작아질수록 덩어리지어져 그림처럼 보인다”며 “그래서 나는 성경을 필사한다고 하지 않고 성경을 그린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어 “사람들이 그림인 줄 알고 봤다가 글자인걸 알고 가까이 와서 읽어보게끔 유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박 작가는 글씨가 그림처럼 보이게 하는 그만의 방법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자간’과 ‘행간’ 거리다. 그는 “아래 행의 글씨가 위쪽 행으로 들어간다. 손깍지 끼듯이 덩어리지게끔 만든다”며 “글씨가 모여서 엮여졌을 때 예쁘게 보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부산 중구 프라미스랜드에서 상시전시 중인 박형만 작가의 작품들.

박 작가는 이렇게 완성한 작품이 약 300점이라고 말했다. 성경 각 권을 나무판에 새겼고, 신구약 전체를 나무판에 적은 것도 있다고 했다.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해 그걸 필사한 것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로마서 8장은 지금까지 600번 넘게 썼다고 한다. 현재 박 작가 작품 중 일부는 부산 중구 ‘프라미스랜드’에 전시돼 있다. 최근엔 박 작가의 성경필사 형식을 배우기 위해 그가 다니는 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성경필사 모임도 생겼다. 내년엔 이를 좀 더 확장해 클래스를 열 계획도 있다.

박 작가는 “성경필사가 주는 유익이 크다”며 성경필사를 권했다. 그는 “무엇보다 성경필사에 집중하다 보면 말씀과 나밖에 안 남는다”며 “어느 순간엔 말씀을 쓰는 나까지 잊어버리고 말씀만 남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경필사 때마다 주님 주시는 은혜와 감동이 다 다르다”며 “지금도 성경필사를 계속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박 작가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딱 하나다. ‘주님이 창조한 원리대로 살라’는 것”이라며 “성경은 보면 볼수록 삶을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게 하는 최상의 지침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부산=글·사진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