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전문가들 “정보 공개 기준·절차, 일관성과 공정성이 필수” [이슈&탐사]

[누구를 위한 범죄공개 금지인가] ⑦·끝 어디에도 없는 금지

해외 전문가들은 한국 범죄정보 공개 시스템과 관련해 공개 기준과 절차에 일관성과 공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법학자 9명은 지난 8월부터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및 화상 인터뷰를 통해 자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형사사건 공개 방식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들은 선별적으로 범죄정보를 숨기거나 공개할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형사사건 공개 여부는 독립기관 심사를 거쳐 투명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문제는 한국 법무부·검찰 재량권”

연방검사 출신인 스티븐 멀로이 미국 멤피스대 법학과 교수는 형사사건 공개 여부를 법무부·검찰에서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한국의 규정과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재량권(discretion)”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수사기관이 범죄정보 공개 여부를 정하는 데 개입해선 안 된다는 의미였다.

멀로이 교수는 “기소 결정이 내려진 뒤부터는 투명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 특히 사건 공개 여부는 검찰과 전혀 관계없는 독립된 판사나 기관에 의해 정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공소장 공개 여부에 대해선 “공소장 비공개는 법원이 예외적으로 허락할 때 가능하다”며 “공소장은 미성년자 사건 등을 제외하고는 법원에 제출된 시점부터 모두에게 공개된다”고 했다. 이는 한국 법무부가 “미국도 첫 공판이 열린 뒤 공소장이 공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던 것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멀로이 교수는 “공소장은 공문서(public document)”라며 “미국에서는 법원 서류를 검색하듯 공소장도 원문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조사가 끝나고 기소 준비가 된 때부터는 관련 내용을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적절할 뿐 아니라 그런 공개는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특정사건 비공개는 매우 독특”

이부스키 마코토 일본 세이조대 법학과 교수는 한국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으로 인해 수사 중인 사건이 비공개될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이는 일본 학자들에게는 매우 독특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범죄정보 공개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말이었다.


일본에선 검찰이 형사사건 관련 정보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공소장 내용은 첫 공판 때 공개되는데 그 이전에 언론이 공소장 내용을 보도하더라도 문제 삼기는 어렵다. 미도리 다이스케 히토쓰바시대 법학과 교수는 “언론이 검사를 취재해 비공식적으로 공소사실을 보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타 타츠야 게이오대 법학과 교수는 “기소 전 수사 단계의 정보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형법에는 ‘명예훼손죄’가 있지만 공익을 위한 사건 공개에는 이를 적용할 수 없다. 미도리 교수는 “공익 목적이거나 진실하다고 증명되는 보도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도리 교수는 “일본에서도 공판 전 보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며 “최선의 보도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개 여부는 독립기관이 결정해야”

마르크 죌러 독일 뮌헨대 법학과 교수는 한국의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과 관련해 “사건 공개를 거부하는 결정은 확실하고 투명한 기준에 근거해야 하며, 독립기관에 의해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공개 여부의 키를 사실상 법무부나 검찰이 쥐고 있는 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죌러 교수는 “사건 정보를 비공개하는 결정은 오직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범죄정보 공개 제도에 관해선 “우리는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며 “독일 헌법은 특히 언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건 정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시스템을 가장 확실하게 금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샤 지만 라이프니츠 하노버대 법학과 교수는 “사건 공개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법적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선 공판 이전에 공소장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하는 것은 형법(제353조d)에 따라 처벌할 수 있지만, 실제 처벌 사례는 드물다. 죌러 교수는 “제353조d의 실질적 의미는 매우 낮다”며 “공소장은 공판 전까지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언론의 자유를 위해 보도를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베른트 홀츠나겔 뮌스터대 법학과 교수는 “소년법원 사건이나 일부 성범죄 사건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비공개한다”고 설명했다.

“편향적 공개 결정은 안 돼”

리사 웨블리 영국 버밍엄대 로스쿨 학장은 형사사건 공개 여부를 심의하는 한국의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에 관한 질문에 “일관성과 공정성이 있는 시스템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웨블리 학장은 “심의위가 별도 기관의 감독을 받는지, 편향적인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지 등이 중요한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이유가 평판 훼손(reputational damage)인 경우엔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영국에서는 명예 훼손이나 재정적 피해 등을 이유로 사건을 비공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웨블리 학장은 또 “영국은 첫 공판 뒤에는 개방적인 사법체계로 전환함으로써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했다. 에릭 바렌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미디어법학과 명예교수도 “정부 부처가 (정보 공개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일반 국민은 공소장을 포함한 모든 법원 문서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슈&탐사1팀 김경택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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