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혜윰노트

[혜윰노트] 웰다잉, 죽음을 준비할 때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40대의 중간에 서 있다 보니 부고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경우도 있고, 암 선고를 받고 몇 개월 만에 떠난 사람도 있다. 나는 한동안 안타깝고 슬프겠지만 유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무너지기도 한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 예기치 않은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고, 톨스토이가 말했다지. 맞다. 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온다. 사느라 바쁘고 사느라 힘들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몇 년째 대학생들의 사회적기업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학생이지만 사업계획서 작성이나 발표 스킬이 보통이 아니다. 학생들의 아이디어에는 그해의 이슈나 트렌드가 반영되기도 하고, 선의로 가득해서 비즈니스보다는 봉사활동에 가깝게 느껴지는 사업계획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일수록 구체적이고 감동적이다. 올해는 ‘웰다잉’을 이야기한 팀이 그랬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큰 충격과 상처로 남았기에, 평소에 가까운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유서와 같은 글을 남길 수 있는 서비스를 구상한 것이다.

웰다잉이란 무엇일까.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죽음일까. 괜찮은 삶이었다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다면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좀 쉬울까. 최근에 철학자 김진영씨의 유고 에세이 ‘아침의 피아노’를 읽었다. 암 선고를 받고부터 임종 3일 전까지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썼던 글을 모은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음미하며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적인 문장들을 적었는데 책의 마지막 두 페이지에는 각각 ‘적요한 상태’ ‘내 마음은 편안하다’라는 한 문장씩만 적혀 있다. 그의 죽음은 본인과 가족에게 준비된 죽음이었고, 그가 남긴 글은 자신은 물론 유족과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으리라.

얼마 전에는 ‘무브 투 헤븐’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서점에 서서 넘겨봤던 책 ‘죽은 자의 집 청소’가 떠올랐다. 둘 다 주로 자살이나 고독사한 사람들의 집을 청소하는 유품정리사의 이야기다.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홀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의 공간과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다. 명복을 빌어주기도 하고, 그들이 못다 한 이야기를 발견하고 들어주는 역할도 한다. 서글픈 죽음의 주인공은 노인뿐 아니라 청년이나 청소년인 경우도 많다. 책과 드라마는 모두 죽음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비추며 결국엔 인간의 존엄성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다.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국내 사망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작년에는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아 인구 감소국이 됐다. 죽음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암이나 심장질환, 폐렴 등 질병 사망이 가장 많고 이 경우 얼마간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다. 편치 않은 몸과 정신으로나마 가족을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과 고독사도 늘어나고, 교통사고나 살인처럼 사고사도 많다. 사랑하는 존재의 갑작스러운 부재,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은 유가족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상처로 남는다. 웰다잉이 남겨진 사람들을 포함해서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일상에서 죽음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유언일기를 쓰자는 대학생의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죽음에 대한 생각과 유언이 글로 정리돼 있다면 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난 옛 애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나에게 내준 시간과 마음에 대해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내 장례식에 초대할 생각이다. 갑자기 장례식 초대장을 받으면 어이없으려나. 그렇게 몇 사람만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해서 뿌려졌으면 좋겠다. 슬퍼하지 말고, 나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로 보내주길.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