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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미운 패션산업

윤소정 패션마케터


위인전을 너무 많이 읽은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되길 막연히 바라왔다. 그러면서도 대학 진학 때는 지극히 이기적으로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전공으로 삼았다.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걸 좋아해 패션을 선택했는데 가끔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보통 전공과 직업에 대한 불만족이 높았다.

먼저 1990년대에 휘몰아친 명품 열풍으로 사치 산업, 과소비와 위화감 조장의 주범이 된 것 같아 부끄러웠고, 산업이 성장하면서도 열정페이나 각종 부당한 악습이 이어져 자랑스럽지 못했다. 2000년대엔 패스트 패션 덕분에 더 많이 소비하게 하고 썩지도 않는 화학섬유 쓰레기를 산처럼 쌓는 민폐 산업으로 주목받아 낯뜨거웠다. 거기에다 저개발 국가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들까지 직업 자부심을 해치는 이슈가 끝없이 이어졌다.

다행히 요즘은 환경과 노동 인권을 챙기자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패션 기업들도 여러 방식으로 변하고 있어 반갑다. 그러면서도 이미 커져 버린 소비를 줄일 때 뒤따를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걱정된다. 패션산업의 최고 장점은 디자이너뿐 아니라 원사 채취에서부터 봉제업에 이르는 종사자는 물론 옷가게 점원까지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자리가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후 서울 청계천 물로 염색을 하고 미싱 하나로 자녀를 키우며 지금의 동대문 의류 산업이 만들어졌고, 1970년대에는 섬유산업이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할 만큼 자원 없는 경제를 키우는 데 효자 노릇을 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전 세계 저개발 국가에서 섬유패션 관련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인구가 셀 수 없이 많다. 소비 하나를 줄이면 생산 현장에서는 백 개, 천 개의 기회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과연 그 대가는 어떤 모습일지. 그래도 멈추지 못해 위험한 곡예를 이어가는 것보다 안전하게 속도를 늦출 궁리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참 다행이다.

윤소정 패션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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