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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최 알렉산드라씨께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귀하의 존재를 처음 안 건 약 한 달 전입니다. 일 때문에 정신이 없던 와중이었지요. 질병관리청으로부터 ‘1차 예약확인안내’라는 제목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몇 달 전 백신 접종을 마쳤기에 단순한 행정 오류라 여겼습니다. 직업상 하루에도 온갖 단체로부터 문자 수십 통을 받는 터라 무심히 넘기려던 차에 ‘TSOY ALEXANDRA’라는 외국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문자에는 한 지방 보건소의 전화번호가 접종 예약번호와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오류가 정정되지 않으면 귀하께서 백신을 맞지 못할 것 같아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보건소 직원은 오류를 고치겠다고 했습니다. 당신께서 백신을 맞으실 수 있느냐 물으니 방법을 찾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당신을 잊고 지냈습니다.

아니, 사실 그 뒤에도 당신은 종종 제게 소환됐습니다. 백신 2차 접종 간격이 단축되면서 일정이 바뀌었다는 문자가 수차례 왔습니다. 좀 걱정이 됐지만 다시 보건소로 전화하진 않았습니다. 앞선 답변을 온전히 믿어서라고만 하면 솔직하지 못한 변명입니다. 그보다는 스스로가 앞선 선의를 재차 발휘할 만큼 선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정확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문자 속 1차 접종 예정일 전날, 당신의 이름이 담긴 문자가 다시 도착했습니다. 그냥 두기에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일하러 간 기자회견장에서 틈틈이 전화를 걸었지만 보건소도 바쁜지 매번 통화 중이었습니다. 열 몇 번째 시도 끝에야 낯선 목소리의 직원이 정보를 수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통보가 당신께 제대로 갈 수 있는지 묻기 전에 전화는 끊겼습니다.

이튿날 보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날과 또 다른 목소리의 직원이 접종 예약 시간이 지났다며 오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잘못된 번호라고 하자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으려는 그에게, 당신께서 접종을 받을 방법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직원은 직접 적은 번호 말고는 연락할 수단이 애초 없었다고, 이제 접종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다더군요.

알 길 없는 당신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당신이 계신 작은 도시에는 외국인이 5000명 남짓 있습니다. 농가가 많은 그곳에서 통계상 가장 비중이 큰 건 미등록, 달리 말해 ‘불법체류’ 노동자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실수로 번호를 잘못 적은 게 아니라 추적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탓에 번호를 바꿔 적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한국은 그리 따뜻한 나라가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은 지난겨울 한 캄보디아 여성이 얼어 죽었던 곳과 비슷한 농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오늘도 고된 하루를 마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외국인 일손이 부족하다는 중소기업 공장, 또는 공사 현장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잠이 드셨을 수도 있겠네요.

설령 미등록 신분이 아니라 해도 접종을 하러 가긴 쉽지 않았을 터입니다. 한 활동가는 제게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사업주 허락 없인 평일에 시간을 내 접종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해줬습니다. 주말조차 일하는 경우도 허다한 마당에 평일에만 운영되는 보건소 예방접종센터에 갈 엄두를 못 내는 건 당연합니다.

그날 검색을 해보고서야 당신의 성인 TSOY가 ‘최’의 키릴문자식 표기라는 걸 알았습니다. 소련 시절 고려인 2세 가수 빅토르 최와 같은 표기더군요. 당신은 어쩌면 제 주변과 그리 다르지 않은 생김새일지 모릅니다. 문자에 적힌 열여덟에서 마흔아홉 사이, 젊은 나이인 당신이 어떤 사연으로 고향을 떠나왔을지 저는 감히 알 수 없습니다.

알렉산드라씨, 귀하께선 이 글을 읽어보지 못하시겠지요. 그럼에도 기억하려 씁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고된 노동과 질병의 위험, 추방의 두려움에 떨고 계실지 모를 그대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처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계실 것입니다. 당신과 그분들이 안심할 수 있는 날이야말로, 곧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날입니다. 머지않아 그런 날이 오길 기도하겠습니다.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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