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은 광풍에 흔들릴지라도…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 중에 광풍을 잔잔케 하시는 기적이 있습니다. 이 기적의 사건이 성경에 기록돼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진리이며, 거짓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매우 중요한 영적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 주님은 강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인생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아서 인생의 항해 가운데 광풍이 내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광풍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합니까.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제자들도 광풍이 내리칠 것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실력이 좋아도 광풍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떻게 광풍이 내리칠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성공을 맛보고,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강한 존재이구나’하는 교만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높여 자랑합니다. 그러나 광풍과 같은 고난과 위기의 때가 오면 내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를 산다고 할지라도, 코로나 시기가 종결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들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인생의 광풍을 만나게 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이 어려운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 속에서 항해를 시작한 선택에 대해 후회와 분노가 일기도 하고, 항해중에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배를 탈 때에는 바다가 평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배 안에 물이 가득하게 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자 제자들도 “주여, 주여 죽겠나이다.” 외치며 주무시고 계시던 예수님을 깨웁니다. 내 안전을 내가 지킬 수 없는 위급한 상황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아닙니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은 강하십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으로 보입니다. 배에 광풍이 내리치자 제자들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죽겠다고 외치지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어려움에 무관심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의도가 있으셨습니다.

제자들이 깨우자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며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령하십니다. 이렇게 명령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힘이 있어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창조주이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우리의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주님은 강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주님이 얼마나 강하신 분이신지를 우리가 받아들이며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광풍을 만난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광풍을 만난 것 같은 우리의 인생에서 주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하고 주님이 강하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광풍을 만난 우리 인생 가운데 강함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남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많이 나옵니다. 기도하라는 것과 예배해야 된다는 것, 사랑하고, 용서하고, 품고, 주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 다 주님의 명령이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명령이 ‘두려워하지 말라’인 것입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을 가장 많이 하셨을까요. 우리 인생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연약하지만, 강함 되시는 주님을 붙잡고 신뢰하는 자에게 두려움을 이겨낼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허락하시고, 모든 위기를 이기게 하십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 안에 담대함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우리 마음 가운데 근심과 믿음의 자리는 같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게 되면 믿음이 물러가지만 믿음이 있게 되면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꾸짖으시며 잔잔케 하실 때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책망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약하지만 주님은 강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5,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어있는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그 무덤가에 가셨을 때 주변에 있는 가족들, 특별히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어려움의 시기를 보내면서 주님이 우리 가운데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있다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풍랑의 때에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으로 무기력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강함 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의지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강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게 된다면 우리는 주님께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제자들과 같이 주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고 고백합니다. 부르짖으며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위기의 때에 사람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 기도를 들으시고 강함 되시는 하나님께서 사자굴에 갇혀있던 다니엘을 사자의 입을 막음으로 지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할 때 하나님은 모든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다윗이 믿음 가운데 골리앗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와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가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어야 세상의 풍랑이 잔잔케 되는 역사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2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내 영혼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믿음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광풍과 같이 몰아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과 인생의 갖가지 문제들이 다 해결함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해야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광풍을 잔잔케 하시는 능력이 우리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잔잔케 되었다 할지라도 내 안에 믿음이 없으면 문제가 해결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이 잘 되어야 하고, 영혼에 믿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질병과 사회의 문제들을 의학적, 물질적, 혹은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많은 영적인 사건과 현상들에 대하여 우리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광풍을 꾸짖는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헬라어 원문을 보면 광풍에 대하여 ‘라일랍스 에네모’라는 단어가 쓰여 있습니다. ‘에네모’라는 단어는 ‘바람’, ‘라일랍스’라는 것은 ‘돌풍’이란 의미와 함께 ‘공격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광풍은 말 그대로 인간의 통제의 한계를 벗어난 미쳐 날뛰며 공격하는 바람입니다. 그런 광풍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인격체가 아닌 자연을 어떻게 꾸짖으십니까. 여기서 ‘꾸짖다’는 표현은 귀신을 내쫓을 때 꾸짖는 것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광풍을 바라보시고, 꾸짖으셨다는 것입니다.

질병과 코로나바이러스 등이 문제일 수가 있지만, 그 질병과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이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가정의 어려움도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로 우리 안에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면, 그것은 영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꾸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우리의 믿음만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와 자신들을 쫓아오는 애굽 군대로 사방이 다 막힌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합니다.

마치 오늘날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지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홍해 앞에 선 것과 같이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지만, 그 홍해를 가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믿음으로 기도할 때 우리 삶의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사랑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어야 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만큼은 멀어지면 안 됩니다. 특별히 그 누구보다도 주님과는 함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우리가 어디 있든지 하나님께서 성도님들과 함께 하심을 믿고, 그 믿음으로 기도하며 형통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광풍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믿음이 빛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되 강함 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의지하여 “광풍 속에 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어두움의 때에 빛을 발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가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황덕영 새중앙교회 담임목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