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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탐욕이 탐욕에게

강창욱 국제부 차장


국정감사랍시고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다그치는 국회의원들을 보니 후련하기는커녕 눈꼴사납기만 했다. 김 의장이 딱해서가 아니다. 골목상권 침해 운운하며 그를 욕심쟁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적어도 정치인이라는 부류에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범죄 혐의나 도덕적 해이가 드러나면 뻔뻔하게 부인하고 동료 의원들은 온몸을 날려 감싸주는 게 요즘 눈앞의 정치인들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인들이 플랫폼기업 수장들을 한데 집합시켜 호통치는 국감은 ‘권력에 눈먼 자’들이 ‘돈에 눈먼 자’들을 나무라는 촌극으로만 보인다.

정치인은 스스로 기업인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듯하다. 자신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기업인은 착취와 기만으로 자기 배를 불리려 한다는 주장이 저 당당한 꾸지람에 내장돼 있다. 정작 기업인은 정치인이야말로 탐욕과 갑질의 끝판왕이고 자신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혁신을 이루고 소비자 후생과 국가경제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고 생각할 게다. 정부가 기업들 팔 비틀어 돈 뜯어간 게 한두 해 일이던가. 나쁘게만 보자면 착취하고 기만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감시하는 눈이 없다면 정경유착은 불 보듯 훤하다.

권력을 좇는 이들이 돈을 좇는 이들보다 나을 게 뭔가. 권력자는 그 힘으로 돈과 이권을 손에 넣으려 한다. 돈에 목매는 이들은 자기 사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권력에 기대려 한다. 일부는 직접 정치에 발을 들이고 대부분은 정치와 거래한다. 그래서 그들이 결국엔 한배를 타고 가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최순실 게이트’의 몇몇 대목이 바로 그 한배에서 벌어졌다.

그때의 유착을 도려낸 지금은 다른가. 박근혜정부를 위해 말(馬)을 선물했던 삼성이 문재인정부를 위해 “3년간 청년일자리 3만개 지원”이라는 말(약속)을 선물하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로 보인다. 6년 전 정부는 어쨌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길을 터준 셈이었고, 올 8월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재수감 200여일 만에 가석방 형식으로 풀어줬다. 말과 일자리가 삼성을 도운 정부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부회장이 선물보따리를 풀었다’는 식의 언론 보도는 그런 거래를 기정사실화한다.

정치인은 기업인에게 돈을 원하고, 기업인은 정치인에게 비호를 기대한다. 집중포화에도 김 의장은 침착했다. 그는 이렇다 할 반박 하나 없이 온갖 지적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잘 준비된 답변들을 내놨다. 국감을 앞두고 국회의원 역할을 맡은 직원들에게 호통을 들어가며 리허설을 했을 것이다. 국감장에서 갑인 양 행세한 의원들은 이미 카카오의 예상 질문지 안에 있었다. 김 의장의 책임 인정과 사과, 사업 철수·재검토 약속은 너무 고분고분해서 싱거울 정도였다. 더 몰아치기 어려운 의원들은 맥빠진 언성만 높였다. 그간 탐욕 문제로 도마에 오른 정치인들이 김 의장처럼 지적받은 문제마다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 것을 포기했다면 우리 사회가 꽤 많은 에너지를 아꼈을 것이다.

전 세계 주요 인사의 돈세탁과 부정축재 정황을 폭로한 문건 ‘판도라 페이퍼’의 주인공은 정치인이었다. 명단에 오른 전현직 정상 30여명 중에서도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부패 척결을 외쳐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지난 몇 년간 괴로운 심정으로 목도했지만 정의를 부르짖던 이들의 부조리한 민낯이 더 혐오스러운 법이다.

정치인이 추구하는 건 애초 정의가 아니라 포퓰리즘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헛된 희망을 걸지 않고, 나라를 거덜내는 감언이설에도 쉽게 낚이지 않는다.

강창욱 국제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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