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장수에서 민주당 필승 카드로… 가난이 키운 개혁가

이재명이 걸어온 길
화전민 아들로 태어난 소년공
공장 프레스에 굽은 팔 장애
노무현 정신이 정치로 이끌어

이 후보가 1982년 3월 중앙대 입학식에서 모친 구호명 여사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구 여사는 지난해 3월 88세로 별세했다. 이재명 열린캠프 제공

“공정과 민생을 위해 기득권과 일전을 불사하는 개혁가.”

이재명 경기지사가 ‘자신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냐’는 국민일보의 질문에 10일 내놓은 답이다.

10일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 후보는 주류가 아닌 전형적인 비주류 출신의 정치인이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 후보는 “역사는 기득권자가 아니라 변방의 아웃사이더와 민중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2021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웃사이더라는 측면이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1964년 경북 안동에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 대신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해 ‘소년공’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후보는 고무공장에서 전기모터에 손가락이 말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했고, 야구글러브 공장에서도 프레스에 왼팔이 끼는 골절상으로 ‘굽은 팔’ 장애를 얻었다. 사장은 “기계 값이 얼만데?”라며 치료받을 동안 품삯도 주지 않았다. 이 후보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다. 야간 고등공민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하자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해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 온 지 4년 만에 반지하를 벗어나 처음 1층으로 옮겼던 1980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가족들과 밥을 먹고 있다. 왼쪽 두 번째가 이 후보. 이재명 열린캠프 제공

무엇보다 ‘군기잡기’를 이유로 자행되는 선임 노동자의 폭력은 그의 ‘공장 탈출’ 계기가 됐다. 그는 소년공으로 일하며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해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의 공장 친구 심정운씨는 “그렇게 독하게 공부하는 놈은 처음 봤다”고 했다. 1986년에는 사법고시(연수원 18기)에 합격했다.

이 후보가 변호사 시절인 2000년 경기도 성남 분당지역 부당용도변경 반대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재명 열린캠프 제공

이 후보는 사법연수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강연을 듣고 노동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강연 와서 본인 활동을 쭉 설명하고 ‘변호사는 굶지 않는다’까지 가르쳐주셨다”며 “‘걱정하지 말고 현장으로 가라’고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전혀 정치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제가 정치를 하게 만든 분이 사실은 노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성남에서 변호사 개업 후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하고 시민운동에 투신했다. 이 후보는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 병원들이 문을 닫으면서 의료 공백이 심각해지자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었는데, 당시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성남시의회가 이를 부결하면서 크게 좌절했다. 이때 그는 회의장을 점거해 공무집행 방해로 수배를 받았다. 이후 그는 직접 시장이 돼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 후보의 정치 입문은 순탄치 않았다.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성남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고, 2008년 총선에선 성남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다시 도전해 당선된 뒤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 후보는 대선 후보지만 의회정치 경험이 없다. 그는 “변방(경기도)의 장점은 국민과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구중궁궐(여의도)에 있는 사람은 정치적 논쟁은 하겠지만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고 했다.

성남시장이던 2016년 12월 촛불집회에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나란히 앉아 있다. 이재명 열린캠프 제공

그가 정치적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201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결정적이었다. 촛불 정국에서 ‘박근혜 탄핵·구속’ 메시지를 선점하며 ‘사이다 정치인’ 주가를 끌어올렸다. 대선 경선에서 2위 안희정 전 지사에게 0.03% 포인트 뒤진 21.2%로 3위를 기록하며 기염을 토했다.

이 후보는 2018년 경기지사 선거에서 승리하며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다. 진보진영에서 경기지사가 나온 것은 16년 만이었다. 하지만 대선 및 지방선거 경선을 거치며 문재인, 전해철 후보 등 친문 진영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은 상처로 남았다. 이 후보는 “(당시) 페이스메이커로 나섰는데 이길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섰다. 지금은 왜 그랬나 싶다”고 회고했다. 그는 ‘형님 강제입원’ 의혹 사건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위기를 겪었지만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 7월 11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진상조사 촉구를 위해 서울대를 방문했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이재명 열린캠프 제공

그는 경기지사로 ‘기본소득’ 등 자신의 시그니처 정책을 확실히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존재감을 높였다. 최근 야당이 ‘성남 대장지구 개발 의혹’으로 공세를 펼쳤으나 이 후보는 정면돌파로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그 결과 이 지사는 국회의원 경험 없이 대선 후보로 확정된 첫 민주당 후보가 됐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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