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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암 치료기의 새 발견… 심정지 위험 ‘심실빈맥’도 잡는다

[이런 질병, 이런 치료]

인천성모병원, MRI촬영도 가능한
‘메르디안 라이낙’으로 치료 성공
영역 넓히는 방사선 암 치료기
치매·골격계 질환에도 적용 연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의료진이 첨단 방사선 장비 메르디안 라이낙으로 심실빈맥 환자 치료를 시연하고 있다. 환자 가슴에 부착된 것은 MRI 영상을 실시간 받을 수 있는 보디코일(Bodycoil)이다. 인천성모병원 제공

암 치료에 주로 쓰이는 방사선 장비가 활용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간 악성 종양이 아닌, 켈로이드(상처 후 흉터)나 뇌수막종 등 몇몇 양성 질환 치료에 드물게 쓰여 왔는데 최근엔 ‘심실빈맥’ 같은 중증 심장질환 치료에도 활용되고 있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은 뇌졸중으로 입원해 치료받던 중 갑자기 심실빈맥이 발생해 혈압 저하와 쇼크가 온 70대 A씨를 ‘메르디안 라이낙’이라는 첨단 방사선 치료기로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방사선 종양학과 곽유강 교수와 심장혈관내과 변재호 교수가 호흡을 맞춰 일궈낸 성과다.

심실빈맥은 심근경색, 협심증 등으로 손상된 심장 근육세포 주변에서 전기신호 이상이 생겨 심장이 빨리 뛰는 병적 상태다. 정상적인 심장 박동은 분당 60~100회인데, 심실빈맥의 경우 분당 120회 넘게 뛰어 혈액을 전신으로 원활하게 보내지 못한다.

변재호 교수는 11일 “심실빈맥을 제때 치료하지 않거나 방치해 자꾸 재발하면 쇼크, 심정지, 사망(심장 돌연사)으로 이어질 수 있어 긴급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심실빈맥 진료 환자는 2016년 5683명, 2018년 6178명, 2020년 6472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A씨도 심실빈맥 치료를 위해 약물(항부정맥제)과 삽입형제세동기(몸 속에 심은 심장박동기), 전극도자절제술(고주파 열로 심장 이상 신호 부위를 지져 제거)까지 동원됐지만 계속 재발하며 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변 교수는 일부 병원에서 시도하고 있는 방사선 치료를 고려하고 곽 교수에게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메르디안 라이낙은 치료 전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해 종양을 정확히 조준한 다음 고용량 방사선을 쬘 수 있어 정상 조직 손상이 거의 없이 암을 치료하는 장비로, 꿈의 방사선 치료기로 불린다. 방사선 치료 중에도 MRI를 실시간으로 찍어 암의 위치와 변화를 확인할 수 있고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가 방사선량을 자동으로 계산해 안전성과 치료 효과를 높인다.

기존 방사선 장비는 환자가 움직이거나 숨을 쉬면 종양 위치가 변해 치료 범위를 실제 암 크기 보다 넓게 잡고 치료했다. 이 때문에 주변 정상 조직까지 방사선에 피폭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인천성모병원은 2018년 11월 아시아 국가 처음으로 메르디안 라이낙을 도입했다.

곽 교수는 “메르디안 라이낙이 실시간으로 MRI를 찍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심장은 분당 60회 이상 움직임이 있는 장기인 만큼 실시간 병변을 확인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방사선 치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치료는 조심스러웠다. A씨가 삽입형 제세동기를 몸 속에 갖고 있던 터라 자칫 자기장을 내는 MRI 방사선 장비가 제세동기의 기능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3시간 동안 제세동기 작동을 멈춘 채 심장혈관내과의 집중 모니터링을 병행하며 무사히 치료를 끝냈다. 곽 교수는 “심실빈맥은 손상된 심장근육이 쓸데없이 많은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발생한다. 고용량 방사선을 그 부위에 1회 쪼여 신호를 못 보내도록, 한마디로 ‘잠재웠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환자에 따라선 최대 5회까지 방사선을 조사하기도 한다. A씨는 치료 후 심실빈맥 횟수가 크게 줄었고 석달째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심실빈맥 환자의 방사선 치료는 2017년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연구논문이 발표된 이후 세계 각국에서 후속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일반 방사선 치료기를 이용해 심실빈맥 환자 치료를 몇 차례 시도한 바 있다. 서울대병원은 이와 관련된 국책 연구과제를 진행 중이다.

단, 모든 심실빈맥 환자들이 방사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김성환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심실빈맥 발생 부위를 특정지을 수 있어야 하고 약물이 효과가 없거나 견디지 못하는 경우, 전극도자절제술을 시도했음에도 심실빈맥이 계속 재발하고 조절되지 않는 ‘불응성 환자’에게 고려해 볼 수 있다. 심실빈맥이 조절되지 않으면 즉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불응성 심실빈맥 환자는 전체의 10~20% 정도로 파악된다.

방사선종양학과 곽유강 교수가 치료와 관련한 상담을 하는 모습. 인천성모병원 제공

곽유강 교수는 “방사선 치료는 암 외에 뇌수막종, 켈로이드, 이소성 골화증 같은 ‘증식성 양성 질환(점점 자라지만 암처럼 전이되지는 않는 병)’ 치료에 오래 전부터 이용돼 왔고 최근 심실빈맥 치료에도 고무적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치료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면서 “치매 같은 신경퇴행성이나 골격계 질병에도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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