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성 목사의 예수 동행]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따라가자


미래는 언제나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미래는 흥미롭기보다 두려움을 주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무조건 “도와주세요”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따라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결정을 하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지 않는다. 그래서 열심히 살면서도 물이 포도주가 되는 역사,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다.

아무리 옳아 보여도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확인해야 한다. 어떤 일은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도하는 것도 확인해야 할까. 그런데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성령께서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전도하려는 것을 막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사도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위대함은 이 순간에 성령께서 유럽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분별하고 순종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은 결심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사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뜻을 구하는 자를 반드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똑같이 말씀하신다.

한쪽 문이 닫혔다면 다른 문은 열려 있기 마련이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된 후에 아버지를 장사하기 위해 가나안으로 잠시 돌아온 적이 있었을 때, 그가 던져졌던 구덩이를 지나게 되었다 한다. 그 구덩이는 어떤 구덩이인가. 형제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던져 넣은 구덩이였다. 그런데 요셉은 그 구덩이를 향해 축복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 구덩이에 던져졌기에 파라오 다음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무엇이든 자기가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이다. 하나님까지도 자신이 소원하는 대로 도와주시는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는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리셨던 기도, “하실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가 아니겠는가.

부목사 한 분이 청년 때 주의 뜻을 분명히 듣고 결정할 일이 있으면, 금식기도원에 올라갔었는데 대부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나왔다 한다. 하나님의 뜻이 금세 깨달아졌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주님의 뜻은 예배와 말씀 가운데 들었던 것이었다 한다. 다만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기에 방황하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했다.

미국에 계신 어느 분이 메일을 보내셨다. 40대 중반의 집사인데 변화 없는 신앙생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간증하는 이들을 보면 서운함과 부러움이 교차하곤 했다 한다. 그래서 복음 성가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를 수없이 부르며 눈물도 흘렸지만, 결국 주님의 기쁨이 아니라 나의 기쁨에서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라’는 설교를 듣고 마음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다. 모든 상황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게 뭘까를 생각하게 됐고 그것이 큰 기쁨과 위로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는 “삶의 초점이 나에게서 주님으로 바뀌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까’ 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면 주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기성 선한목자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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