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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한국형 영어덜트 시리즈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문자는 실용성이 생명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손으로 쓰는 것보다 입력이 중요하다. 세종대왕이 디지털 시대를 내다보셨는지 한글은 21세기를 맞이해 더욱 빛나고 있다. 체계성과 경제성, 과학성으로 한글은 언어 전달의 기능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문자체계로 떠올랐다. 한글은 표음문자지만 상형문자 속성도 있어 영상이미지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한다. ‘총, 균, 쇠’의 저자인 문명비평가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라고 극찬한 이유다.

‘한글’(루덴스)의 저자인 김영욱에 따르면 한글은 음성학적 특징까지 고려한, 정밀하게 설계된 문자시스템이다. 기본 자음인 ㄱ, ㄴ, ㅁ, ㅅ, ㅇ 5개를 가획해 글자를 늘려가며 우주를 상징하는 둥근 점인 ‘·’(天)과 땅을 상징하는 ‘―’(地),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 있는 ‘ㅣ’(人)의 세 기본 모음으로 모든 모음자를 만들 수 있게 설계됐다. 이런 설계 원리를 이용해 휴대전화 자판을 만들었기에 자판 10개로 “가장 쉽고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풍부하게 인간의 언어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우리가 디지털 문화를 선도하는 것은 한글이 있어 가능하다.

신곡이 나올 때마다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 한글을 배우는 세계 시민이 크게 늘어났다. 방탄소년단에 대한 모든 기사는 팬클럽 ‘아미’가 자국 언어로 번역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이 덕분인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수상자가 되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미 2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오징어 게임’은 10조원 매출도 가능해 보인다.

세계 시민이 자신이 쓴 글로 서로 만나는 초연결시대에 K팝, K영화, K클래식과 같이 ‘K’가 붙은 단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2년 동안 선진국 중에서 평균 경제성장률 1위였다. K방역도 빛났지만 K웹툰도 있다. 웹툰의 국내 매출은 1조원 안팎이지만 세계로 확산돼 100조원 매출 달성도 무난해 보인다. 모바일 중심으로 문화소비가 이뤄지는 시대에 K문화는 뛰어난 문자의 힘에 힘입어 ‘콘텐츠의 대세’로 부상하고 있다.

한강의 소설집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 소설도 인기다. 몇 소설가는 신간소설이 발표될 때마다 수십개국에 저작권이 수출된다. 이미 18개국과 저작권 계약을 맺은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는 일본에서 ‘서점대상’으로 선정되면서 20만부가 팔렸다. ‘아몬드’는 일본에서 밀리언셀러에 오른 최초의 한국 소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몬드’는 국내에서 80만부가 팔렸다.

이 소설을 펴낸 창비는 ‘K팝을 넘어 K영어덜트가 온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며 한국형 영어덜트 시리즈인 ‘소설-Y’를 시작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영미권에서는 영어덜트가 대세다. 현실을 초월하거나 도피하는 로맨스 판타지가 주종이었던 영어덜트 시리즈는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가혹한 선택에 직면한 주인공이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생존 로맨스로 바뀌고 있다. 영어덜트 시리즈는 영상화돼 블록버스터가 되는 것이 공식이다. ‘소설-Y’는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둔 기획이다.

‘소설-Y’ 첫 권으로 ‘나나’(이희영)를 펴낸 창비는 천선란 장편소설 ‘나인’과 박소영 장편소설 ‘스노볼’(전2권)을 올해 안에 펴낼 예정이다. 한국형 영어덜트 시리즈는 가족애와 우정, 연대의 정서로 꿈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인생과 성장의 의미를 묻게 만든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국민의 10%가 희생된 한국전쟁을 치르고도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나라의 저력을 보여준다. ‘소설-Y’가 K스토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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