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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우리 손으로 역사 파괴하는 걸 막으려면


인천 부평구 ‘미쓰비시(三菱) 줄사택’이 철거 위기를 넘겼다니 반갑다. 줄사택은 1938년 히로나카상공(弘中商工)이 노동자 숙소로 만들었고, 4년 뒤 미쓰비시 제강이 인수한 사택이다. 지진이 잦은 일본의 건축 양식을 따 높지 않게 일자로 지어 하나의 지붕 아래 여러 세대가 같이 산다. 16개동으로 빽빽한 이곳에 한때는 조선인 근로자 1000여명이 머물렀다고 한다. 광복 후 줄사택은 하나씩 철거돼 총 6개동만 남으며 슬럼화됐다. 주민은 흉물이라며 철거를 요구했고, 부평구는 2019년 이 중 4개동을 철거해 공영주차장을 짓고 줄사택의 역사적 흔적은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러던 게 지난해 10월 문화재청이 공문을 보내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로 시대적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공간으로 보존 및 활용 방안의 모색이 필요한 공간이다. 문화재 등록이 검토돼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이다. 부평구는 자체적으로 자문기구인 미쓰비시 줄사택 민관협의회를 만들어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 결과 줄사택은 문화재청 요청대로 그대로 보존하고, 주민이 요구하는 공영주차장은 더 넓은 대체 부지를 구해 짓는 것으로 타개책을 찾은 것이다.

문화재청 공문 한 장이 갖는 힘이 참 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늘 그런 건 아니었다. 인천 중구 송월동의 애경사 건물의 경우 문화재청 공문이 휴지조각처럼 힘이 없었다. 애경사는 1930년대에 세워진 애경 비누공장으로 근대 산업사에 중요한 건축 유산으로 평가된다. 중구청은 공영주차장을 짓기 위해 이를 매입해 2017년 철거를 진행했다. 시민단체에서는 남은 건물이라도 지키려고 기자회견을 열었고, 문화재청도 철거 중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애경사 건물은 모두 철거되고 말았다.

개항장이 있어 근대 문물의 유입이 빨랐던 인천에는 중요한 근대 건축물이 곳곳에 있지만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조일양조장 본사 건물은 2012년 철거돼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아사히 양조장(공장)은 인천시립수영장이 됐다. 일제 강점기 일본 육군 조병창으로 사용됐던 부평 미군 ‘캠프마켓’ 내의 근대문화유산도 철거 위기에 처했다. 문화재청이 철거 유예를 요청하는 공문을 지난 8월 인천시와 부평구 등에 보냈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병창은 병기와 탄약 등의 제조와 수리를 담당했던 공장이다. 일본 육군은 전쟁 말기까지 조병창을 총 8개 운영했다. 일본 본토에 6개, 괴뢰국인 만주국에 1개, 부평에 마지막 1개를 만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군함도의 강제동원 역사를 밝히기 위해 밖으로 외교전을 펼치면서 정작 국내에 있는 강제동원 역사의 흔적은 우리 스스로, 그것도 관이 지우려 한다”는 비난이 나온다.

현재 근대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등록문화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등록문화재는 지정 문화재(국보·보물 등)가 아닌 문화재 중 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 지난 것 가운데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해 등록한 문화재를 말한다.

문제는 미쓰비시 줄사택이나 조병창처럼 미처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거나 50년 연한에 미달돼 문화재로 등록될 수 없어서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근현대 문화유산들이다. 캠프마켓의 경우도 등록문화재라면 문화재청이 철거를 저지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등록문화재가 아니라 한계가 있다. ‘근현대문화유산법’ 제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근현대문화유산법에서 임시등록제도를 두면 긴급보호조치를 할 수 있다. 애경사도 이 제도가 있었다면 철거를 막았을 것이다. 또 ‘예비문화재 제도’를 도입하면 50년 연한에 미달된 것도 미리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제도적 보완은 서두를수록 좋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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