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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ESG 경영과 선도형 고진로 전략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부 장관)


ESG 경영이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라는 사회적 가치 창출의 각 영역에서 뒤떨어지는 기업은 아무리 제품을 잘 만들어도 수출길이 막히고 투자를 받는 것도 어려워지게 생겼다. 작년 1월 다보스포럼은 세계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기업은 이윤 창출이라는 주주들의 이익 극대화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 증진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는 말이다.

환경(E)은 전 인류가 이해관계자다. 지배구조(G)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적 가치 창출을 가능케 하는 의사 결정 구조를 의미한다. 사회영역(S)에서의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는 종업원이다. 노동자 보호와 건전한 노사관계 구축은 필수다. 공급 사슬을 형성하는 협력기업도 중요한 이해관계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핵심적 이해관계자다. 소비자도 빼놓을 수 없는 이해관계자이며 나아가서는 지역사회 전체가 이해관계자다. 이들의 이익 증진을 함께 도모하자는 것이 ESG 경영이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당위적 주장이자 시대적 흐름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 증진을 도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윤 창출 자체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이 사회적 존경을 받으면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투자 유치도 용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ESG 경영은 필연적으로 추가적 비용 지출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투자가 그러하듯이 ESG 투자도 과실을 낳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투자와 과실 사이의 인과관계가 불확실하거나 정량화하기 어렵다는 문제까지 겹친다. 뻔히 알면서도 ESG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를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이미 가치소비 현상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 제품을 소비할 때 그 제품 속에 응결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고 기꺼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현상 말이다.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의류가 고가임에도 없어서 못 파는 경우 등이 좋은 예이다. ESG 경영은 가치소비 시대에 피할 수 없는 경영 전략이다. ESG가 아니더라도 단기적 비용 압박 문제는 어차피 극복해야 할 우리 경제의 과제다. 저비용으로 그저 그런 저가 제품을 만들어 가성비에 의존해 박리다매로 성장하던 추격형 성장의 단계는 이미 지났다.

이런 저진로(Low-Road) 전략으로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어차피 고진로(High-Road)로 트랙을 갈아타야 한다. 고비용을 감수하고 고품질 제품을 만들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게 선도형 경제의 성장 방식이다. 비용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됐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ESG 경영은 사회적 가치 창출까지 포함하는 업그레이드된 선도형 고진로 전략이자 우리 경제의 생존 전략이다.

ESG가 당위적 차원의 사회적 가치만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로서 직접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특히 협력기업의 이익 증진을 위한 노력이 그러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융복합과 네트워킹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개방형 혁신의 시대라고도 한다. 본원적 발명을 기반으로 혁신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기술들이 융복합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고 혁신이 이뤄진다는 말이다. 이런 시대에는 한 기업이 자신의 혁신 과정을 혼자서 모두 디자인할 수도 없고 혁신 결과를 혼자서 예측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개방형 혁신이다. 산업·업종 간 횡적 개방과 공급 사슬 내부의 종적 개방이 혁신의 필수 조건이다. 협력기업이 개방형 혁신의 공동 주체로 나서자면 공급 사슬 내부의 수직적 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바로 동반성장 정책이 추구하는 바다.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은 이제 더 이상 시혜적 배려의 문제가 아니다. 상생 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은 ESG 경영의 핵심이자 4차 산업혁명 시대 고진로 전략의 핵심이다. 개별 기업도 중요하지만 기업 간 관계가 더 중요하다. 세계 시장에서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개별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 간 경쟁시대가 열린 것이다. 건강하고 효율적인 기업 생태계 구축에 실패하는 나라는 도태될 것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 시련을 잘 극복한다면 ESG 경영의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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