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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노벨문학상, 세계문학 만나는 통로

김남중 문화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지난주 발표된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압둘라자크 구르나(73)였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문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작품으로 1994년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 정도가 국제적 경력에 해당한다. 최근 나온 영국 가디언 인터뷰를 보면 본인조차 수상 소식을 믿지 않은 모양이다.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전하는 노벨위원회 전화를 장난 전화로 여겼다고 한다. 노벨상위원회 웹사이트에 오른 발표문을 확인하고서야 자신의 수상을 믿게 됐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를 겸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매년 세계에서 단 한 명의 작가를 선택해 왕관을 씌운다. 이 한 명이 누가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유명한 작가가 너무 많고 상을 받을 만한 후보작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수상자 선정에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성별, 지역별, 장르별 배분이 얼마나 작용하는지 역시 알 수 없다.

한림원은 지난해 미국 바깥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78)을 선택한 데 이어 올해 탄자니아 난민 출신 흑인 소설가를 호명함으로써 또다시 예상을 비껴갔다. 이런 의외의 결정에 대해 한림원이 스스로 강조해온 ‘진정으로 탁월한 작가’ ‘탁월한 작품’이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림원은 2016년 팝가수 밥 딜런을 수상자로 결정해 논란을 빚었고, 2018년엔 한림원 위원 관련 성추문 등으로 수상자를 발표하지 못했다. 실추된 상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수상자를 매우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작년과 올해 한림원의 선택은 비인기 작가들에 대한 지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상업적인 성공이나 유명세를 얻지 못했다고 해도 뛰어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얼마든지 있고, 그들이 결국엔 발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와 인기, 명예까지 다 거머쥔 작가들에게 노벨상까지 안겨줄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벨문학상이 세계 최고 작가를 선출하는 건 아니다. 세계 문학의 세상으로 독자들을 이끈다는 점이야말로 노벨문학상의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파리대왕’(1983년 수상자 윌리엄 골딩의 소설)을 읽었을 것이며, 오에 겐자부로(일본 소설가, 1994년 수상자)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폴란드 시인, 1996년 수상자)를 알 수 있을까.

올해 노벨문학상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작가를 발견하게 됐다. 구르나의 문학적 주제는 난민이다. 그의 소설은 낯선 동아프리카의 역사로, 난민들의 삶 속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한국 독자들이 구르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번역, 출판이 이뤄져야 한다. 아직까지 국내에 구르나의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글릭의 시집도 여태 출판되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조차 한국어로 읽을 수 없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06년 프란츠카프카상 수상 이후 10년 넘게 노벨문학상 후보 상위에 올라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올해도 상을 받지 못했다. 일본 야후재팬에는 ‘하루키는 언제 노벨상을 받을까? 이터널 퀘스천’이란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국은 언제 노벨문학상을 받을까? 이것은 한국인들의 영원한 질문일 것이다. 고은 시인을 제외하면 한국 작가의 이름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여기서 번역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다면 세계 문학에 진입할 수 없다. 주로 영어를 사용하는 한림원 위원들이 읽을 수 있어야 후보가 될 수 있다.

김남중 문화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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