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여 성직자로 16년은 분투의 역사… 성평등 지향 않는 교회 도태될 것

평등한 교회를 향한 리더십 민숙희 광명교회 사제

민숙희 마가렛 대한성공회 광명교회 사제가 15일 경기도 광명교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 사제는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교단은 여성의 리더십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미”라며 “여성 신도들에게 ‘본인을 인정해주지 않는 교회에서 나오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16년간 성직자로서 내디딘 발걸음 중에는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첫 여성 일반교회 단독 사목’ ‘나눔의 집 첫 여성 원장사제’ ‘서울교구 첫 여성 관할사제’ 등 새로운 역사를 쓰는 동안 성차별적인 시선은 언제나 그를 따라왔다. 2005년 사제 서품을 받은 민숙희(마가렛) 대한성공회 광명교회 사제의 이야기다.

올해는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사제인 민병옥(카타리나) 사제가 2001년 정식으로 서품을 받은 지 20주년 되는 해다. 민 사제는 대한성공회 여성성직자회 회장으로서 지난달 열린 20주년 행사를 마무리했다. 15일 민 사제를 경기도 광명교회에서 만나 여성 사제 서품을 받기까지의 분투 과정에 대해 들었다.

민 사제가 동료들과 2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건 ‘대한성공회 여성 전체’의 역사였다. 그는 “여성 사제 서품이 가능했던 건 성직자뿐 아니라 여성 평신도들이 오랫동안 교회 내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나 정책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라며 “대한성공회 초기 선교부터 시작된 여성 신도들의 활동 흔적을 찾고 기록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여성성직자회가 여성사제 서품 20주년을 맞아 발간한 ‘여성들이 함께 길을 내고 걷는 우리들의 사제’에는 1910년부터 활동한 ‘전도부인’과 6·25전쟁 이후 활동한 여성 평신도 조직(어머니연합회, GFS 등)의 역사가 담겨있다.

98년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민 사제에게도 성차별의 기억은 생생하다. 당시 여선배 네 명이 신대원을 졸업했지만 모두 정식 서품을 받지 못한 채 대기 상태로 머무르고 있었다. 학교는 민 사제를 포함한 여성 신학생 세 명이 입학하자 서둘러 ‘성직후보자 고시’를 만들고 응시 자격을 남성에게만 줬다. 분노한 여학생들은 서로를 위로했다. 시험을 함께 보이콧한 남동기 5명도 큰 힘이 됐다. 민 사제는 “시험을 거부했던 남자 동기들과 함께 한강에 가 ‘앞으로의 길이 험난하겠다’ ‘여성들만 도태되게 두지 않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끈끈한 동료의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 사제 서품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여성 인권 신장, 민주화 흐름과 함께 90년대 초부터 여성 성직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민 사제가 활동한 여성성직연구회의 여성 성직 청원 서명운동이 이 흐름의 정점을 찍었다. 교인 300명 서명을 계획했는데 1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결국 99년 여성성직수용안이 전국의회에서 통과됐다.

여성 사제 서품 이후에도 여성 성직자의 길은 고단했다. 민 사제는 “내가 어디를 가도 다 반대를 겪고 갔다. 처음이다 보니 더 그랬다”고 말했다. 여성 성직자가 보좌사제로 발령나거나 규모가 작고 재정 자립이 약한 교회로 가면 아무 반대가 없었지만 관할사제나 규모가 큰 교회로 발령나면 어김없이 반대가 있었다. 2019년 광명교회 관할사제로 온 민 사제는 3년째 서울교구에서 유일한 여성 관할사제다. 현재 대한성공회 사제 200여명 중 여성 사제는 18명에 불과하다.

민 사제는 “광명교회에 관할사제로 왔을 때도 여성 사제를 반대해 교회를 떠난 분들이 있었다. 그땐 정말 마음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성직자는 성별과 상관없이 성사를 집행하는 사람이기에 성차별적 시선은 곧 씻겨질 편견이었다. 민 사제는 ‘내가 잘해야 여성 후배들에게도 길이 있다’는 생각으로 사제 본연의 역할에 집중했고 지금은 사제와 성도 사이에 성별은 아무런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 양육은 후배 여성 성직자가 이겨내야 할 또 다른 과제다. 과거 남성 위주의 성직자 사회에서는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사모라는 존재가 있었지만 여성 성직자에겐 그렇지 않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서품을 받은 여성 성직자 중 출산을 한 이도 3명뿐이다. 민 사제도 어렵게 얻은 사제 서품에 공백이 생길까 두려워 출산을 포기했다. 그는 “‘여자가 배가 불러서 재단에 서는 꼴은 못 본다’는 말들을 무시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결정기구 내 여성 성직자 비율 확대와 더불어 성직자의 출산·육아 휴직 제도는 앞으로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민 사제는 여성 리더십을 ‘평등한 교회를 지향하는 리더십’이라고 정의했다. 성평등의 가치가 옳다는 건 모두가 알지만 고착화된 성역할을 개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 리더가 성평등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광명교회의 경우 여성 교인들만의 몫이던 애찬 준비가 이젠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돌아간다. 또 남성 위주였던 교회위원회에도 여성 위원 수가 늘었다. 민 사제는 “‘여성 사제’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남성 중심적인 불균형적 시각이 바뀐다”고 말했다.

민 사제는 성평등을 지향하지 않는 교회, 교단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절정에 치닫는 와중에, 성평등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는 교단은 성도나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여성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의 여성 성도들에게 ‘삐뚤어진 성인식을 지닌 교단에서 나오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글·사진=안규영 기자 ky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