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희망은 위험한 거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퍼지기 직전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1917’이 미국과 영국에서 개봉했다. 전쟁의 끔찍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명작이라 평가받지만, 국내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겹쳐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한 불운한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말미 독일군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하려는 찰나, 상부의 지시로 갑작스레 계획이 틀어지자 영국군 장교가 긴 한숨과 함께 내뱉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난 오늘이 좋은 날이 될지도 모른다고 희망했지. 희망은 위험한 거야.”

전략상 일단 오늘은 피 튀기는 전투가 멈췄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못할 평화이다. 내일이나 모레 갑자기 독일군에 대한 돌격 명령이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생명을 잠깐이나마 보전받았다는 사실 덕분에 공포와 초조가 수많은 젊은이의 너덜너덜해진 생명을 안으로부터 갉아먹을 시간적 여유를 벌었을 뿐이다.

인간은 본성상 희망을 소유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삶에 충실한 일반인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안정과 보람마저 보장되지 않는 전쟁과 전염병과 대공황 시기에 희망은 고문의 도구가 되곤 한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우리는 일상회복이라는 희망을 거듭 품었고, 매번 그 희망이 물러나는 것을 경험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인내하고 협력한 결과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다 다시 대유행 국면으로 접어들면 몹시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최근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며 ‘위드 코로나’에 대한 논의와 준비가 본격화되고 있다. 팬데믹 상황의 종식에서 바이러스와의 공존으로 희망의 내용도 재조정되었다. 하지만 위드 코로나 정책을 이미 시행한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오히려 증가했다는 소식에, 희망을 제대로 품기도 전에 희망의 빛깔이 어두워진 느낌도 없지 않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고, 신선한 공기에 코와 입을 노출하며 길을 걷고, 식탁의 친교가 전염병이 아니라 기쁨과 사랑의 매개가 되는 세상이 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참고 기다려야 할까.

영국에서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작되고 몇 주 후 세계 언론에 소개된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런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베티 스피어가 요양원에서 108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소식이다. 1913년 태어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 경제 대공황, 냉전체제 등을 경험한 할머니에게 기자는 지난 100년간 있었던 일 중 지금의 상황이 최악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제1차 대전이 최악이었지. 코비드는 비할 바가 아니지.”

물론 한 개인이 어릴 적 기억으로 재구성한 전쟁의 끔찍한 경험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고통과 객관적으로 비교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비록 ‘희망은 위험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베티 스피어 같은 평범한 사람들 삶의 증언을 통해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희망은 이어져 왔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희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의 위험도 늘 있기에 ‘미래를 어떻게 꿈꿔야 할까’라는 질문은 인류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본성상 붙잡을 수 없는 희망을 자기 힘으로 성취하고 소유하고자 할 때 희망은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 반면 삶의 어둠 속에서도 예기치 않은 선물로써 희망을 경험할 때 마음에 용기와 기쁨이 머물 공간이 마련된다. 추상적 개념이나 목표로써 희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과 안정과 보람의 계기로 있어 줌으로써 희망은 존재하는 모든 것 사이에서 역동적 힘으로 활동한다. 이러한 이유로 ‘노령에도 이토록 건강하고 행복한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베티 스피어가 던진 한마디에 오늘도 우직하게 희망을 걸어 본다.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고 그들을 웃게 해주려고 노력하세요.”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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