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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콜럼버스의 날, 원주민의 날

천지우 논설위원


“유럽인 탐험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부족 국가들에 폭력과 파괴의 물결을 가져오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질병을 퍼뜨렸다. 우리는 이 부끄러운 과거를 피해선 안 된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콜럼버스의 날’(10월 둘째 월요일) 하루 뒤인 12일 미 원주민 단체 행사에서 한 말이다.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10월 12일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뒤 그곳에서 이어진 정복의 역사를 반성한 것이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유럽인 탐험가들이 원주민 공동체에 많은 잘못과 잔혹 행위를 저지른 고통스러운 역사를 인정한다”면서 올해 10월 둘째 월요일을 콜럼버스의 날이자 ‘원주민의 날’로 선포했다.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한 곳은 바하마 제도의 한 섬이다. 현지 주민들은 그곳을 ‘과나하니’라고 불렀는데 콜럼버스는 ‘산살바도르’(구세주라는 뜻)라고 멋대로 이름 붙였다. 그는 벌거벗은 채로 살던 주민들과 접촉한 뒤 일지에 “들은 것을 빨리 되뇌어 말하는 것을 보니 그들은 똑똑한 하인이 될 것이다. 내가 떠날 무렵에 그들 중 여섯 명을 잡아서 국왕께 데리고 가 말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고 적었다. 원주민을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상륙한 날은 원주민들에겐 엄청난 비극이 시작된 날이다.

수년 전부터 미국뿐 아니라 중남미 각지에서 콜럼버스를 위인으로 기리고 콜럼버스의 날을 기념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어왔다. 백악관이 이번에 공식적으로 원주민의 날을 선포한 것은 그런 반발이 맺은 결실이다. 반성하는 시늉만 하는 것일지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잘못된 표현이었다는 게 상식이 돼가고 있지만, 이를 강하게 거부하는 쪽도 있다. 1년 전 콜럼버스의 날에 당시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극단적 활동가들이 콜럼버스의 공적을 실패로, 발견을 잔학 행위로, 성취를 침략으로 바꾸려 한다”며 이런 성상 파괴주의를 막자고 호소했다.

천지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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