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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벌까? 원인은 육아

[책과 길] 커리어 그리고 가정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488쪽, 2만2000원

게티이미지뱅크

지금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대학을 졸업하고 학업 성적도 뛰어나고 더 우수한 점수로 취업한다. 그런데도 남녀 간 소득 격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다. 왜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클리우디아 골딘의 책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미국 인구총조사와 지역사회조사 데이터 등을 보면, 대학 또는 대학원 졸업 후 직장에서 1∼2년 차 된 여성과 남성의 임금 수준은 비슷하다. 졸업 후 10년 정도 지나면 남녀 사이에 상당한 임금 격차가 생긴다. 여성이 주로 저임금 직종을 선택하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직종 내에서도 남녀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같은 변호사나 회계사여도 여성은 회사 내 보수가 적은 파트에서 일하거나 승진하지 못하고 더 작은 회사로 옮겨간다. 일하는 시간도 남성에 비해 줄어든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저자가 찾아낸 원인은 이렇다. “그 사이에 아이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취업 후 10여년의 시기는 커리어에서 ‘올라가거나 나가거나’가 결정되는 시기이자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시기이다. 문제는 두 가지 일을 함께 성취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점에 있다. ‘커리어와 가정의 시간 상충’이 발생한다. 승진에 대한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타이밍과 거기에 요구되는 막대한 시간 투여가 가정도 꾸리고 싶은 젊은 부부들의 삶에 어마어마한 어려움을 야기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그렇지만, 현실에선 여성이 훨씬 큰 비용을 치른다.

이 시기 직장인들에게는 직장의 ‘온콜’(on-call·긴급 호출에 바로 대응할 수 있는 상태)과 가정의 온콜이 동시에 쏟아진다. 남성과 여성이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다. 가정의 온콜에 응답하기 위해 커리어의 속도를 늦추는 쪽은 여성, 직장의 온콜에 대응하며 승진의 사다리를 밟아가는 것은 남성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30대 중·후반에 시간 압박이 가장 크다는 현실은 왜 여성들이 커리어에서 공격적이지 못한지, 왜 승진 사다리를 남성만큼 빠르게 올라가지 못하는지, 왜 더 낮은 보수를 받는지 알려준다.


“커리어 상의 중요한 도약이 판가름 나기 전에 아이를 낳게 되는데, 아이는 종종 커리어를 갉아먹는다. 그렇다고 아이 낳는 것을 그 뒤로 미루면 이번에는 커리어가 여성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갉아먹는다. 이 타이밍은 잔인하다.”

여성의 역사는 커리어와 가정, 둘 다를 갖고자 한 여정이었다. 저자는 30년 전부터 결혼 출산 고용 등의 데이터를 이용해 미국 대졸 여성들의 삶을 연구해왔다. 그는 이번 책에서 지난 100여년간의 미국 대졸 여성을 세대별로 다섯 개 집단으로 분류하고, 각 집단이 커리어와 가정을 어떻게 추구해 왔는지 추적했다.

1878∼97년에 태어나 1900∼20년에 대학을 졸업한 집단1의 여성은 가정이나 커리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 시대에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많은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았다.

1920∼45년 대학을 졸업한 집단2는 먼저 일자리를 구했고, 그다음에 가정을 꾸렸다고 볼 수 있다. 풍요의 시대를 산 집단3(1946∼65년 대학 졸업)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가정, 그다음에 일자리’로 이 세대의 특징을 요약할 수 있다.

1970년대 즈음 커리어와 가정에 대한 열망이 더 커진 대졸 여성은 이 둘을 추구하려면 순서를 두어야 함을 깨달았다. 1960년대 중반∼70년대 말에 대학을 졸업한 집단4는 변호사 의사 경영자 등 선망받는 고소득 전문직으로 대거 진출을 꿈꾼 첫 세대이다. 커리어를 우선했고 전문대학원에 많이 갔고 피임약의 발명으로 결혼과 출산을 뒤로 미룰 수 있었다.

1958년 이후에 태어나 80년 무렵에 대학을 졸업하기 시작한 집단5는 커리어와 가정, 모두를 그것도 동시에 성취하고자 한다. 이들은 집단4의 여성들이 커리어를 추구하며 결혼을 미루다가 출산을 못 하는 결과를 지켜봤다. 집단4 이상으로 커리어에 대한 추구가 강하고 결혼도 비슷하게 늦지만, 시험관 수정 등 생식 관련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힘입어 출산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사회에서 일하는 집단5 여성들을 가로막고 있는 게 ‘시간의 장벽’이다. 커리어를 향한 여성들의 긴 여정 속에서 많은 장애물이 제거됐지만 ‘시간 제약’이라는 장애물은 건재하다.

하버드대를 나온 여성들조차도 졸업 후 15년 시점에 아이가 있으면 전일제로 일하는 사람이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MBA 취득자들 사이에 소득 격차를 유발하는 두 요인은 경력 단절과 주당 노동시간인데, 여성 MBA가 경력 중단 기간이 길고 노동시간이 적다. 이유는 물론 출산과 육아 부담이다. 저자는 “아이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커리어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이것이 성별 소득 격차가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시간의 장벽을 치우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노동의 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여성들의 시간에 주로 의존하는 육아·돌봄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하버드 경제학과의 첫 여성 종신교수로 매년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클라우디아 골딘.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국내 소개되는 골딘 교수의 첫 책이다. 생각의힘 제공

저자는 책에서 변호사와 약사, 두 직종을 비교한다. 변호사는 여전히 밤낮없이 장시간 일하지만, 약사는 근래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서 고수익을 올린다. 변호사와 달리 약사 사이에선 성별 임금 차이도 적다.

여성 인재들은 노동 시간을 더 많이 통제할 수 있고, 온콜로 응급 상황을 맡아야 하는 시간이 줄어든 곳으로 몰려든다. 약사 수의사 등이 대표적이다. 수의사는 의사에 비해 노동 시간이 적고 규칙적이며 비상 호출이 적고 훈련 기간이 더 짧다.

젊은 남성들도 요즘은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 사용하고자 한다. 저자는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고는 여성 인재들과 젊은 인재들을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시간 유연성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노동을 조직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며 그렇게 해도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의외로 많은 영역에서 입증됐다”며 현재의 노동 구조를 바꿔나가라고 촉구한다.

남녀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돌봄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돌봄이 삐걱거리면 여성들이 타격을 받는다. 직장을 쉬거나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 남성이 돌봄을 더 많이 분담할 필요도 있지만, 국가나 사회가 돌봄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저자는 “여성이 돌봄 때문에 일자리를 희생하지 않게 해야 하고, 일자리 때문에 돌봄을 희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며 “노동과 돌봄의 시스템 자체가 재사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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