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심리부검으로 드러난 삶의 궤적… 숨겼던 고인 아픔이 보인다

업체 운영하다 심각한 경영난 직면
전세금 돌려받아 빚 갚고 말 안해
성장 과정 굴곡졌던 흔적도 노출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A씨는 사망 약 1년 3개월 전부터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가며 겨우 운영했으나 사업 부진은 지속해서 이어졌다. A씨는 결국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한 순간 일용직 노동자 신세가 되자 A씨는 수면문제를 겪으며 과로하는 날도 많아졌다.

A씨는 제3금융권과 카드 대출을 비롯해 가족,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며 급한 금전적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빚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사업 자금 문제로 동업자로부터 독촉을 받으며 갈등도 커졌다. A씨는 매일 같이 심리적 압박감과 좌절감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사망 3개월 전부터는 4시간 이상 잠도 자지 못하고 한밤 중에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는 등 수면장애가 악화됐다. 주변에서는 A씨가 한숨을 자주 쉬고 피로해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사망 1개월 전부터 A씨는 지인에게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도 “빚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 지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던 중 A씨는 평소처럼 출근한다며 집을 나선 이후 가족들과 하루종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였고 다음날 한 야산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A씨가 발견됐다.

A씨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로는 단순하지 않아 생애 전반을 들여다봐야 하지만 고인은 말이 없었다. 대신 심리 부검이 진행됐다. 심리부검이란 자살사망자의 가족 또는 지인의 진술과 기록을 통해 자살사망자의 심리, 행동 양상 및 변화를 객관적으로 검토해 자살의 원인을 추정하는 조사방법이다. A씨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 겪은 일들, 평소 성격까지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이 잇따라 증언했다.

심리부검 결과 자존심이 강한 A씨는 생계가 막막해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가족간 불화 등의 상처를 감추기 위한 흔적들도 관찰됐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3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1년 동안의 심리부검서에는 A씨처럼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고인들이 겪은 삶의 굴곡이 잘 드러나 있다. 최근 진행된 5건의 심리부검 사례를 토대로 살펴보면 자살사망자들은 죽음을 선택하기 직전까지 우울감을 겪었거나 주변 상황 변화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극단적 선택을 한 후 지난해 9월 심리부검이 진행된 20대 B씨도 어린 시절 가족의 불화를 겪으며 주변에 외로움을 자주 호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부족했고, 코로나19로 대학교 수업도 온라인으로 진행돼 대인관계가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결국 B씨는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심리부검 결과 추정됐다.

고인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일은 자살 예방에도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심리부검 결과를 분석해 상황별 자살 고위험군을 추적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자살의 선제적 예방을 위해선 심리부검을 활성화해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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