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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위기는 그렇게 더 커진다

하윤해 정치부장


기름은 사방에 흥건하게 뿌려져 있었다. 불씨만 있으면 언제든 폭발이 가능한 분위기였다. 그 기폭제 역할을 최순실씨가 했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그렇게 이뤄졌다. 위기 신호는 오래전에 울렸다. 당시 ‘친박’들만 감지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위기감을 느낀 일부 친박들이 있었으나 지도부는 경시했다.

탄핵의 근원은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 전 대통령이 뜬금없이 국정교과서 문제를 꺼내자 유신 시대와 나치 독일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역사 인식이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960∼7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 퍼졌다. 전국 교사 2만1000여명이 ‘역사 쿠데타’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통제하려는 발상’이라는 내용의 시국선언에 서명했다. 박근혜정부라는 둑은 촛불집회라는 카운터펀치에 쓰러졌지만, 그 둑에 구멍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국정교과서 문제였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기 시작한 시점은 2015년 10월이다. 같은 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정교과서를 정당화했다. 당시 여권은 국사교과서들이 좌파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으며,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의 부정적 측면만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심은 달랐다. 그해 12월 5일 국정교과서와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서울 도심의 대규모 집회에 주최 측 추산으로 5만명이 몰렸다. 기폭제만 찾지 못했을 뿐 민심은 이미 박근혜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촛불집회가 ‘박근혜 청와대’를 집어삼켰다.

한 친박 인사는 사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국정교과서 논란 때 청와대의 오더에 동조했던 것”이라며 “보스의 지시를 로봇처럼 따랐다가 보스도 망했고, 우리도 망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박 전 대통령에게 입혀졌던 주술적이고, 전근대적이고, 획일적 사고의 독재자 이미지가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더욱 굳어졌다”고 토로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금 성남 대장지구 개발 의혹의 불길 속에 있다. 국민의힘 유력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고발 사주 의혹에다 부인 김건희씨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윤 전 총장에겐 주술 논란도 악재다. 공식 선출된 대선 후보가 정작 대선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는 수군거림이 여야 모두에서 들린다.

대선 때면 으레 네거티브 공방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용과 규모 면에서 폭발력이 다르다. 대장동 의혹은 부동산 문제와 직결돼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람이 부동산 문제를 일으킨 사람 아니냐”고 이 후보를 비판했다. 이 후보는 대장지구 개발과 관련해 5503억원의 수익을 공공으로 돌린 모범사례라고 주장하지만, 배당금만 4000억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이익을 민간사업자들이 거저먹은 것 아니냐는 의혹과 이로 인한 분노가 더 크다.

윤 전 총장을 위한 고발에 현직 검사가 관여했다는 내용의 고발 사주 의혹은 검찰 사유화 논란을 낳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선 윤 전 총장의 부인 김씨가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패에도 가르침이 있다. 친박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무너지면서 배운 교훈은 위기 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심에 역행하는 줄 알면서도 자기 주장을 고집하거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칠 경우 위기는 더 커진다. 우리가 그렇게 망했다.”

하윤해 정치부장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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