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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인플레이션이 정말 닥쳐온다면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1%로 올렸다. 지금 인플레이션은 세계적 현상이다. 코로나19 위기로 10.4조 달러 정도의 경기부양책이 시행된 반면, 공급 능력은 위축됐다. 수요 구조가 비대면 중심으로 바뀌면서 내구소비재 등에 대한 수요가 늘었지만 공급이 못 따라갔다. 수요가 감소한 서비스 산업 종사자들은 정부 지원이 끝날 때까지 노동시장에 돌아오지 않아서 노동력 부족 현상도 나타났다.

현재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지 지속적일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미국 정부를 비롯한 다수파는 일시적이라는 입장이다. 코로나 위기 직전까지 디플레이션 위협에 시달리던 상태에서 경기부양책은 한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위기로 풀린 돈이 가계부채를 늘려놓아서 소비를 제약할 것이다. 수요 구조 변화에 따른 공급 애로를 타개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 예상은 일부 빗나갔다. 환경 문제 때문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에너지 생산을 늘리기 어려운 것이 장애가 됐다. 강화되는 보호주의도 생산비를 올린다. 미국의 경우 서비스노동자들이 정부 지원이 끝난 뒤에도 잘 돌아오지 않아서 노동시장 구조가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낳고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일시적 인플레이션이 기대로 이어져 지속되는 것이다. 1970년대가 바로 그랬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영국에서 발간되는 이코노미스트지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작은 이유를 들었다. 첫째, 노동자의 교섭력 약화다. 197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노동조합 조직률은 38%였지만, 2019년 16%로 떨어졌다. 미국의 경우 1976년 조직노동자의 60%가 임금을 물가에 연동시키는 단체협약을 맺고 있었지만 1995년에 그 비율이 22%로 떨어졌다. 둘째,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한다고 생각되면 중앙은행이 나서 ‘진압’한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장치다.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은 그런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이 디플레이션 위협에 당면한 것은 여느 선진국보다 더했다. 2013년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목표치를 계속 밑돌았고, 2019년에는 목표치 2.0%에 한참 미달하는 0.4%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위기에서 방역을 잘한 덕분에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올해 선진국의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돌 기미가 보이자 환율도 올라서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넘어설 수 있게 됐다. 그것은 고삐 풀린 물가가 아니라 ‘드디어 목표를 달성한’ 물가인 것이다.

그렇다고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어떻게 되나.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지난 20여년간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한 신뢰 구축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데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OECD 평균보다 낮고 물가연동제를 단체협약에 넣는 것도 일각에서 시작했을 뿐이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신뢰에 의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노동자의 약한 교섭력에 의존하는 것은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으로 인플레이션을 수습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것이 실제로 1980년대 영미에서 인플레이션을 해결한 방식이다. 당시 논리는 ‘낙수(trickle-down) 효과’로 결국 노동자도 이익을 본다는 것이었지만, 그 후 40년 가까이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제자리걸음 하다시피 했다.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다른 방법은 없는가. 일부 유럽국가에서 시도한 ‘사회협약’이 있다. 그들 국가는 사회협약을 통해 각 계층이 고통을 분담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전두환정부의 인플레이션 수습 정책은 폭압에 의거하기는 했지만, 노동자뿐 아니라 고소득층에게도 양보를 요구했다. 그 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후 민주정치 하에서 사회협약을 추구했지만 실패로 끝났고, 분배는 크게 나빠졌다. 그런 구도에서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으로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플레이션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회협약도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문제를 계기로 사회협약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그것은 한국이 어떤 경제체제로 가는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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