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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깜깜이 난민 행정’ 제동 건 법원… 인권 진일보 계기로

한국은 2001년 에티오피아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찾아온 청년을 처음 난민으로 인정했다. 꼭 20년이 지난 지금 국내 난민 체류자는 3000명을 넘었다. 제주의 예멘인 400여명에게 인도적 체류를 허가하고,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390명을 받아들이는 등 전향적 난민 수용국의 면모를 보여준 듯한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3%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4.8%)과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난민 신청 절차부터 까다롭고 기준이 모호해 인천공항 게이트에서 무려 280일간 노숙해야 했던 앙골라 출신 일가족, 10년째 이의신청과 재판을 거듭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출신 30대 등 기막힌 사례가 첩첩이 쌓여 왔다. 방역부터 드라마까지 온갖 것에 ‘K’를 붙이며 세계로 진출하려는 한국의 이면에는 이렇게 외부인의 유입을 차단하는 모순적인 장벽이 높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법무부의 ‘난민 체류지침’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어떤 경우 체류를 허용하고 어떤 경우 구금하는지 규정한 이 지침을 법무부는 1호 난민이 나온 이후 20년간 공개하지 않았다. 잇단 정보공개청구에도 거부로 일관해서 ‘밀실 행정’ ‘깜깜이 행정’이라 불리던 관행에 마침내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지침이 공개되면 신청자들이 악용할 수 있다”는 법무부 논리는 구시대적이었다. 난민 행정의 투명성을 강조한 유엔 협약 정신에 맞지 않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역행하며, 이제 달라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악용으로 입게 될 손해보다 투명한 행정으로 얻게 될 이익이 훨씬 크다. 난민 정책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세계에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과거 유사한 판결에도 기존 논리를 고수해온 법무부가 이번에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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