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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리포트] “가난은 사회문제”… ‘권리형’ 나눔2.0시대 세상을 바꾸다

사랑의열매·마중물의 나눔샘 시민교육 운동

인천 신현고 학생들이 지난해 나눔샘 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한 마을 노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만든 마을과 사람들 책자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단법인 마중물 제공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19년부터 연간 5억원씩 총 15억원을 투입, 나눔의 방향을 새롭게 잡아가고 있다. 노숙인을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같은 시민으로 보는 관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눔의 시선을 바꾸면 취약계층 시민에 대한 감정이 달라진다. 나눔은 더 이상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 공동체 형성 전략이다.

올해 지정기부금단체가 된 사단법인 마중물은 사랑의열매가 선택한 파트너다. 사랑의열매와 사단법인 마중물이 함께 하는 ‘나눔샘’(나눔교육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사업)은 2019년부터 매년 청소년 나눔의 시민교육과 실천동아리 20개팀을 양성해 세상을 바꿔 나가고 있다.

IMF 금융위기가 지나고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무너져 가는 가족공동체에 주목하는 것도 나눔샘 프로젝트의 중요한 몫이다. 산업화 세대가 경제성장의 배경 하에 가족을 돌볼수 있었던 것에 반해 청년들은 아버지처럼만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질 정도로 위기가 일상화됐다. 대학졸업 이후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5포 세대들은 자기돌봄도 안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인근 마중물복합문화공간에서 선배시민이 후배시민을 교육하고 있는 모습. 사단법인 마중물 제공

나눔이 공공부문에서 시민권 차원으로 진행돼야 하는 이유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시혜나 동정 중심의 자선형 나눔에서 시민교육을 통해 불쌍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구조와 제도를 강화하여 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방향으로 권리형 나눔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도 방향을 잘 잡았는지 근본적 질문을 하게 됐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불쌍한 사람이 존재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에 호소한 나눔1.0시대에는 도움을 받는 사람은 낙인감을 느낄 수 있고, 선별되기 위해 때론 자신이 불쌍하다는 것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굴욕감을 느낄 수 있다. 선별적 복지에 기반한 자선형 나눔에서 한걸음 더 나가야 시민이 보인다는 것이 나눔샘 시민교육의 철학이다.

나눔2.0시대에는 권리형 나눔이 등장한다. 가난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생각이 2.0시대의 패러다임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키우기 위해 사단법인 마중물 시민교육팀은 청소년 나눔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인천 남동구 만수초등학교 ‘마을학교’ 사례가 귀감이 되고 있다. 이 학교 4학년 백신종 교사가 학교를 마을로 만들었다. 학급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학생이 있다면 보통 친구들이 장애인 친구를 도와야 한다고 가르쳤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학급은 장애인 학생이 가는 곳을 조사해 보게 했다. 화장실 승강기 도서관 교실 등의 이동 불편 상황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건의했다. 친구를 불쌍한 존재로 보지 않고, 불편이 생기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인천 신현고 나비효과 배너. 사단법인 마중물 제공

나눔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천 서구 신현고등학교의 프로그램 ‘접경’도 주목받고 있다. 신현동은 옛 동네와 아파트가 있고, 이주노동자들도 늘어나면서 세대·인종·종교 등을 이유로 선이 그어졌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 진행됐다. 학생들이 밖으로 나가 지역사회를 바꾸는 일에 나섰다. 지역민 간의 소통을 위해 고등학생들이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취재하고, 직접 동화를 쓰고 삽화를 그린 내용을 책으로 엮어 지역아동센터와 초등학교 등에서 어린이들을 만나 멘토 역할을 했다. 만들어진 동화책은 17권이나 된다. 노인을 인터뷰해 기사화한 ‘마을과 사람’이라는 휴먼북은 30만 조회수에 달한다.

사랑의열매와 마중물의 나눔샘 시민교육 운동은 매년 20개 팀의 청소년 나눔샘 사례를 발굴함과 동시에 1년차 철학과 프로그램 개발, 2년차 나눔샘 교육교재와 영상제작, 그리고 3년차인 2022년 이 성과에 기반하여 나눔샘 시민대학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눔샘 시민대학이 본격화되면 우리나라 나눔의 흐름을 바꾸는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눔샘의 철학을 담고 있는 ‘나눔은 예술’이라는 6개의 강의는 유튜브에 올려 나눔샘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유범상 김영애 이현숙 교수가 예술을 소재로 나눔샘의 철학, 역사, 실천을 담은 콘텐츠다.


권리형 나눔인 나눔2.0시대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배부를 권리는 없지만 배고프지 않을 권리가 있고, 건강을 잃어도 다 잃지 않아야 한다’는 협동과 연대의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시민교육으로 새로운 나눔 철학이 지역사회의 실천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범상 사단법인 마중물 이사장(방송통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개인을 넘어서서 사회를 보는 세상읽기를 통해 사회적 위험에 대해 자기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시민의 형성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핵심적인 관건”이라며 “나눔샘 프로젝트야 말로 시민들이 자선과 동정이 대상이 아니라 권리와 연대의 주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함께 사회적 위험에 대해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실천지혜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눔샘 시민교육은 나눔샘 참여 기관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가고 있다. 인천을 중심으로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부천시 등에서 시민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초·중·고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연간 100시간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내용은 ‘민주주의자들의 교실’로 출간됐다. 또 ‘처음하는 인권교육’, ‘나눔의 예술’ 등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유범상 마중물 이사장 “시민교육분야 나눔2.0 새지평 열어 기뻐”

“공동모금회 나눔교육센터가 폐쇄된 뒤 마중물 시민운동 회원 중심으로 모금회와 함께 나눔교육을 통해 나눔2.0시대를 열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유범상(사진) 사단법인 마중물 이사장은 1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동모금회 배분팀이 마중물 시민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온 것을 계기로 시민교육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마중물 시민운동은 2009년 인천 남동구 만수동 다락방에서 약 10명의 시민들이 모여 만든 학습동아리가 모태다. 2년뒤 사단법인 마중물이 탄생했다. 회비를 내는 회원들이 700여명 수준이다. 인천시민들이 절반을 차지한다. 2017년 협동조합 마중물 문화광장이 만들어졌고 현재 수인선 소래포구역 인근 에코메트로3차 더타워상가 지하에 도서관, 카페, 갤러리, 공연장, 강의실 등을 갖추고 시민 대상 교육을 펼치고 있다.

2019년 만든 마북출판사에서는 6권의 책을 펴냈다. 특히 ‘정의를 찾는 소녀’(유범상 저, 그림 유기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마중물 회원들이 참여해 인형극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공개도 했다. 유 이사장은 “전국의 교사들이 가르치기 어려운 ‘정의’를 동영상과 함께 가르칠 수 있게 되면서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며 “매월 책 한권을 소개하는 북레터 ‘상상상’을 받아보는 회원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유범상 이사장이 주저자로 참여하고 김성희·배혜선·한은경·김유란·김원경 등 초·중·고 교사 5명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시민과 사회정의’는 인천시교육감 인정도서로 등록돼 인천시교육청, 강원도교육청, 경남교육청, 광주시교육청, 부산시교육청, 서울시교육청, 세종시교육청, 전남도교육청, 전북도교육청, 제주도교육청, 충남도교육청, 충북교육청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유 이사장은 “생각열기, 생각나누기, 생각넓히기를 통해 코로나19 비대면 시대에도 지루하지 않게 정의에 대해 교육을 하고 있다”면서 “마중물미디어센터를 통해 앞으로 더 왕성하게 시민교육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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