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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굽고 끓이고, 집 나간 입맛 돌아오네∼

‘천고인비’의 계절, 태안으로 떠나는 맛기행

천고마비 가을은 사람도 덩달아 살찌는 ‘천고인비’(天高人肥)의 계절이다.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만드는 다양한 제철 식재료와 음식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충남 태안의 제철 먹거리로 가을에는 힘이 넘치는 대하(왕새우), 극한의 고소함을 전하는 전어, 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가 꼽힌다. 겨울에는 게국지, 물텀뱅이탕, 우럭젓국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을철 최고의 별미는 태안 특산물인 대하다. 월동을 앞둔 새우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맛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 칼슘 철분 비타민 등이 고루 함유돼 가을 영양식으로 그만이다.

태안지역 대하 어획량이 충남 도내 80%, 전국 60%가량을 차지한다. 안면도 백사장항은 전국 최대의 자연산 대하 집산지로 유명하다. 코로나19 이전 해마다 9월 중순쯤 대하축제가 열리던 곳이다.

대하는 무쇠 불판에 굵은 소금을 깔고 그 위에 올려 굽는다. 주황색으로 변하면 먹으면 된다. 담백하고 쫄깃한 식감이 침샘을 자극한다. 살아 있는 대하를 회로 먹는 것도 별미다. 초고추장에 찍어 베어 물면 탱글탱글한 대하의 속살이 달콤 쫄깃한 맛으로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되돌아오게 한다’는 속담이 회자될 정도로 대표적인 가을의 맛이다. 산란기를 지나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전어는 맛이 담백하고 향이 고소하다. 구이에서부터 회무침, 회, 조림까지 다양한 형태로 조리한다. 특히 통째로 구워 김치에 싸서 머리부터 꼬리까지 뼈째 씹어 먹어야 제맛이다.


꽃게는 어떤 조리법을 적용해도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다만 껍데기째 찌거나 굽거나 삶는다. 껍데기가 꽃게살에서 풍미가 빠져나가는 걸 막아준다. 껍데기 자체도 단백질과 당분 등 여러 성분의 결합체다. 국물 맛에 우러나고 살에 맛을 더해준다. 일반적으로 가을에는 수게가, 봄에는 암게가 맛있다. 된장으로 간을 해서 끓이는 꽃게탕은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낙지의 제철은 보통 가을이다. 태안의 낙지 요리로 ‘박속밀국낙지탕’이 인기다. 낙지가 들어간 국물 요리를 일컫는 ‘연포탕’과 차이가 있다. 무 대신 하얀 박속과 파 및 고추를 썰어 넣고 국물이 끓어오르면 산낙지를 데쳐 낸다. 살짝 익힌 낙지는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탱탱하고 야들야들한 낙지의 식감이 미각을 사로잡는다. 박은 당질과 단백질, 식이섬유가 많으며 칼슘과 비타민류를 함유하고 있어 영양 보충과 비만 해결에 도움이 된다. 박속에서 우러나는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에 칼국수·수제비 등을 넣어 먹는 것이 포인트다. 밀가루로 만든 국물 있는 음식이어서 ‘밀국’이다.


다가올 겨울 먹거리로는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 게국지가 있다. 가을철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춧잎이나 무청, 푸성귀 등 김장재료를 절이고 씻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거친 잎사귀에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갈아 놓은 고추 등을 버무린 다음 ‘게국’으로 간을 맞춘다. 제대로 된 재료가 아닌 허드레 재료로 만드는 재활용 서민 음식이지만 지역의 맛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인기를 얻고 있다. 감칠맛과 시원함에 중독성이 있을 정도여서 다시 찾게 된다. 젓갈 대신 들어가는 게국 간장은 능쟁이를 넣어 삭힌 간장이다. 표준어로 참게를 뜻하는 능쟁이는 서해안 갯벌에 사는 회색의 조그만 게로 예로부터 가을철에 잡아 게장 등으로 만들어 먹었다.


물텀뱅이탕도 빼놓을 수 없다. 물메기를 태안에서 물텀뱅이라 부른다. 살이 부드러워 뼈를 발라낸 뒤 탕 안에 풀어진 살코기를 쭉 들이키면 시원하고 얼큰하면서도 든든한 국물이 속을 따뜻하게 한다.


우럭은 동해, 남해, 서해 등 모든 해안에서 잡힌다. 하지만 태안과 서산 등지에서 잡힌 우럭이 맛 좋기로 유명하다. 낮은 수온에서 자라기 때문에 쫄깃하고 살도 물렁하지 않아 탄력 있다. 지역 전통음식인 우럭젓국은 소금 간을 해 말린 우럭을 쌀뜨물에 무, 대파, 청양고추 등과 함께 끓여 완성한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항구나 시장 어디서나 싼값으로 쉽게 만날 수 있다.



태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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