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편의점풍경화

[편의점 풍경화]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가을 추(秋) 아래 마음 심(心)이 붙으면 슬프다는 뜻의 수(愁)가 된다. 누군지 몰라도 용케 잘 만든 글자라고 오래전 죽은 어느 작가는 감탄했다. 예부터 가을은 그랬나 보다. 편의점 점주에게도 가을은 걱정의 계절. 일반적으로 편의점은 여름에 가장 장사가 잘되고 겨울에 최저점을 찍는다. 가을은 겨울이라는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목에 서 있다. 시름이 깊을 수밖에. 그러잖아도 수색(愁色) 짙은 계절에 올해는 근심이 겹쳤다. 벌써 2년째, 코로나19의 지독한 수렁 가운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재작년 7~9월과 올해 우리 편의점 매출을 비교해보니 마이너스 57%에 이른다. 작년만 해도 40% 하락이더니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욱 강화되며 매출은 급전직하 추락했다. 당신의 급여가 다음 달부터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상상해보시라. 가족 생각에 머리가 하얗게 텅 빌 것이다. 지난달엔 급기야 임대료와 전기요금을 냈더니 한 푼도 남지 않은 통장을 만났다. 15년 자영업을 하며 이런 일은 처음이라 ‘하늘이 노랗다’는 말의 뜻을 실감했다. 눈앞에 뱅글뱅글 별이 돌아가는 모양이 보였다. 직원들 급여는 어떻게 줄까.

계산대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고 있으려니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울린다. “귀하께서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소상공인 긴급지원 대출 대상자입니다. 아직 미신청으로 분류되어 안내드립니다.” 눈이 번쩍 띄었다. 더 이상 대출받을 여력마저 없다고 낙담했는데 ‘긴급지원’ 대상자라니! 부리나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휴대폰이 진동으로 경고음을 전한다. “연결된 번호에서 위험 상황을 탐지했습니다.” 피싱이었다. 평소 그런 것은 순진한 사람들이나 속는 일이라 얕잡았는데 내가 당할 뻔하다니. 보안 앱 하나가 더욱 수렁으로 다가가는 나를 건졌다.

놀란 가슴 진정하며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답장은 “나도 며칠 전 비슷한 일을 겪었어.” 친구가 받은 문자 메시지에는 어느 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었다는데, 접속하니 개인정보를 차례대로 입력하라 그랬다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주민등록번호와 은행 계좌까지 묻는 것을 보고는 멈췄단다. 지진이 일어나도 그 틈에 도둑질하는 치들이 있다더니 이런 상황에도 어려운 사람 눈물 뽑는 자들이 있다며 우리는 혀를 끌끌 찼다. 몹쓸 녀석들!

다행히 정부에서 올여름 손해에 대해서는 보상을 해준다는 발표를 듣고 뉴스 사이트에 들어가 내용과 조건을 살폈다. 기사를 읽고 하단에 붙은 댓글을 무심코 봤다가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자영업은 자기들이 선택해놓고 왜 정부에 보상을 해달라고 하는 거야?” “그동안 많이 벌어놨잖아?” 같은 말들. 물론 치기 어린 사람들의 가벼운 발언이겠지만 때로 어떤 말은 칼날이 돼 가슴에 박힌다. 힘들 때 서로에게 용기를 건네는 말이 있고, 아플 때 상처를 더욱 후비는 돌부리가 있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살아도 부족할 세상에 못 볼 것을 봤다며 조용히 화면을 덮었다. 겨울로 들어서는 이 길목이 유난히 외롭다. ‘64년 만의 가을 한파’란다. 올가을은 단풍도 황량하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