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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방옴부즈맨 확대 필요하다

이정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1709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대패한 스웨덴의 왕 카를 12세는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칼리프로부터 독립된 국민 고충 처리 기관 ‘마잘림’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에 착안해 카를 12세는 1713년 망명 기간 동안 본국을 대리 통치하는 ‘최고 옴부즈맨’ 설치 칙령을 내렸다. 오늘날 옴부즈맨의 시초가 된 제도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한민국 대표 옴부즈맨 기관이다. 행정기관의 위법·부당한 행정으로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은 누구나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신청할 수 있다. 권익위는 민원인과 행정기관의 주장과 사실관계를 조사해 위법 부당한 처분을 시정토록 권고하거나 의견을 표명한다.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 합의·조정을 통해 민원을 해결하기도 한다. 고충민원을 권익위에만 신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패방지권익위법’에는 각 지자체에 지방옴부즈맨, 일명 시민고충처리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 있다.

권익위는 지자체가 시민고충처리위를 설치 운영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역량 강화 워크숍 개최, 시민고충처리위 우수 운영 사례 제공, 맞춤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책을 운영하고 있다. 또 시민고충처리위가 유연하게 설치 운영될 수 있도록 위원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법령 개선도 추진 중이다. 권익위 지원과 지자체 노력에 힘입어 현재 전국 59개 지자체가 시민고충처리위를 설치해 운영 중이며, 신규 설치 지자체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전남도, 아산시 등 10개 지자체가 새로이 시민고충처리위를 도입했다. 설치를 추진 중인 지자체도 54개나 된다.

시민고충처리위 우수 운영 사례도 늘고 있다. 울산시 ‘시민신문고위원회’는 2018년 출범해 총 903건의 고충민원을 해결했다. 특히 관내 구·군 간 상이한 장애인 택시 요금을 통일하고 오랜 세월 체육시설 예정지로 묶여 재산권 행사가 제약됐던 토지의 도시계획을 변경한 것은 그 지역 특성 등을 잘 알고 있는 지방옴부즈맨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 예시다.

하지만 시민고충처리위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 전국 243개 지자체와 17개 교육청 중 설치되지 않은 곳이 더 많다. 시민고충처리위 설치가 더딘 주요 원인은 관심과 조명을 받는 다른 사업들로 인해 예산 배정이 항상 밀리기 때문이다.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시민고충처리위가 자신들의 권한을 침범한다고 생각해 소극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국민신문고에 957만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1년에 1000만건 넘는 민원이 쏟아지는 시대가 왔다. 권익위라는 하나의 기관이 전국의 모든 고충을 처리하는 현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지역 민원은 시민고충처리위가 처리할 수 있도록 지자체장이 적극 나서야 한다. 시민고충처리위를 통해 민원 처리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을 꾀해야 할 시점이다.

이정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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