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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설득·인내의 메르켈 정치… ‘희망’을 보다

[책과 길] 메르켈 리더십
케이티 마튼 지음, 윤철희 옮김
모비딕북스, 468쪽, 2만6000원

지난 2018년 6월 캐나다 샤를부아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의 한 장면. 분열을 일으키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서구 동맹국 전체를 대표해 맞서는 듯한 모습이다. ‘메르켈 리더십’을 쓴 미국 저널리스트 케이티 마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질서를 메르켈만큼 맹렬하게 지켜온 지도자는 없다”고 평가했다. 모비딕북스 제공

앙겔라 메르켈(67)은 2005년 독일의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한 이후 네 번 연임했고, 퇴임을 앞둔 지금도 국민 지지율이 75%에 달한다. 집권한 16년 동안 단 한 건의 부패나 뇌물, 측근 스캔들도 없었다.

메르켈이 재임하는 동안 세계 정치 무대에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니콜라스 사르코지, 에마뉘엘 마크롱, 영국의 토니 블레어, 데이비드 캐머런, 보리스 존슨,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등이 오르내렸다. 메르켈은 거의 유일한 여성이었고, 이들 모두가 인정한 지도자였다.

메르켈은 동독 출신, 과학자, 여성이라는 삼중의 아웃사이더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독일의 최장수 총리, 유럽의 리더, 서구세계의 대표자로 정치 무대를 내려온다.

헝가리 출신의 미국 저널리스트 케이티 마튼이 쓴 ‘메르켈 리더십’은 현대 세계 정치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이 비범한 정치인에 대한 최신의 평전이자 가장 밀착한 기록이다. 저자는 독일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남편 리처드 홀브룩을 통해 2001년 메르켈과 인연을 맺었고, 최근 4년간 메르켈의 허락하에 총리 집무실을 드나들며 취재했다. 메르켈의 지인과 측근은 물론 세계 각국의 정치인, 관료, 학자 백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권력자의 모습을 새로 정의하다


이 책에서 메르켈은 정치도 가치, 진실, 헌신, 품위 등이 승리하는 세계임을 보여준다. 카리스마나 인적 네트워크, 홍보술, 음모 등이 이기는 세계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정치혐오의 시대에 메르켈이 던지는 희망이다. 그는 권력자의 모습을 새롭게 정의했다. 특히 여성이 남성적인 언어나 제스처를 따라 하지 않고도 국가를 운영할 수 있고, 어쩌면 더 잘 해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오늘날에는 어린 소녀가 ‘언젠가 장관이 되고 싶다’, 심지어 ‘총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도 웃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남자가 이런 직무에 적합할지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메르켈이 2018년 연설에서 유머를 섞어 한 이 말은 그가 세계 정치에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을 알려준다.

메르켈이 통일 직후의 독일에서 동독 출신 여성이라는 신분 덕에 엄청난 혜택을 받은 건 사실이다. 헬무트 콜 총리가 그를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36세에 독일의 최연소 장관이 된 것이다. 하지만 50세에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고, 네 번이나 연임한 것은 메르켈의 힘이 아니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지성과 체력, 일과 결과에 대한 집중력과 끈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태도, 겸손함과 침착함, 권력에 대한 절제된 시각 등이 메르켈 리더십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메르켈 정치의 특징들

메르켈은 언제나 결과를 중시했다. 권력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수단이라 생각했고 그 방법은 설득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끈질기게 협상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재능이 있었다. 긴 정치 인생에서 자신을 지탱해준 한 가지 특성을 꼽는다면 무엇이냐는 저자의 질문에 메르켈은 “참을성이요”라고 답했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관심과 칭찬이라는 보상도 바라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일 우리가 신문에서 읽을 내용이 아니라 2년 후에 달성할 결과입니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말이 앞선 정치를 메르켈이 경계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연설은 재미없고 건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격정적이거나 과장된 수사를 거부했고 거창한 문장들, 원대한 메시지를 배제했다. SNS를 하지 않았고 총리실에서 정보와 메시지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재임 기간 내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이는 코로나19 위기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그는 좋은 것이라면 라이벌 정당의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자신의 정책으로 삼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기업 이사회에 여성 30% 의무 배정, 평등 결혼 정책, 기후변화 관련 정책, 원자력발전소 가동 포기 등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메르켈은 공인으로선 이례적으로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가족과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았고 국민들은 총리의 그런 욕구를 승인했다. 사실 메르켈은 대개의 정치인과 달리 대중의 애정을 갈망했던 적이 없다. 권력이라는 마약에 취하지 않았고 평범한 생활의 가치를 알았다.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을 균형적으로 유지한 드문 경우다. 그는 “내가 행복하거나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노력했다

EPA연합뉴스

네 번째 총리에 나설 당시 메르켈은 오래 주저했다. 상황도 어려웠다. 소속 정당은 지방선거에서 연패했고, 극우가 세를 키우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이 있었다. 서방세계에 신뢰할만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메르켈의 출마 결심에는 오바마의 간절한 요청도 작용했다고 저자는 전했다.

“그는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이 전 세계에서 발흥하는 상황에서 달리 대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입후보한 것이었다. 그가 운동장을 떠나면 그 운동장은 트럼프와 푸틴과 시진핑의 차지가 될 터였다.”

메르켈은 금융위기, 브렉시트, 기후위기, 난민위기,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웠고 트럼프, 시진핑, 푸틴 등 ‘스트롱 맨’을 상대했다. 트럼프 집권 4년 동안 유럽이 워싱턴의 도움 없이 몇 차례 위기를 넘겨온 경험의 중심에도 메르켈이 있었다.

저자는 “세계정세가 혼란에 빠지고 사회적 분열이 심각한 지금, 푸틴부터 트럼프에 이르는 권위적인 지도자들에 맞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질서를 메르켈만큼 맹렬하게 지켜온 지도자는 없다”고 평가했다.

메르켈은 보수 정치인이고 매우 신중한 스타일이다. 때로는 비정한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 원전 가동 중단 결정, 난민 100만명 수용 결정 등은 세계에 깊은 감동을 줬다. 각자도생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모두 세계의 일부”라고 외쳤다.

메르켈의 그림자도 있다. 독일에서 창궐하는 AfD(독일을 위한 대안)라는 극우 정당은 메르켈 시대가 낳은 자식이다. 2010년 독일이 그리스에 제공하는 구제금융에 반대해 결성됐고 메르켈의 난민 수용 결정을 계기로 세를 불리고 있다. 여기에 통일 이후 격차와 박탈감에 시달리는 동독인들이 가세했다. 메르켈은 같은 동독 출신이면서도 이들의 반감을 오랫동안 무시했다.

언젠가 역사책에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기를 바라는지 묻는 저자의 질문에 메르켈은 이렇게 답했다. “그는 노력했다.”(She tried) 메르켈은 최선을 다하고 떠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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