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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라이프] 젊은 생각 담으니 장바구니 넘쳤다

편의점 MZ세대 활용법


정신이 번쩍 들게 매운맛이 생각날 때가 있다. 화가 났을 때, 스트레스가 심할 때, 소소하지만 강렬한 자극을 원할 때 사람들은 매운맛을 찾곤 한다. 지난 8월 이마트24 '딜리셔스 비밀탐험대'(딜탐)가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중 '매운맛'이 소환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스트레스 받으니 매운맛이 당기네." 이 한 마디는 '세계 편의점 식품 중 가장 매운맛' 상품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의도하지 않은 한 마디가 실험적 상품 출시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딜탐의 특수한 구성 덕분이었다. 딜탐은 이마트24 MZ세대(1980~2000년대생)로만 구성된 팀이다. 편의점 업계가 주 고객층인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MZ세대 직원을 적극 활용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마트24 '딜리셔스 비밀탐험대' 대원들이 팀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이 팀은 최근 MZ세대 맵부심을 자극할 '세계 최고 편의점 매운맛' 제품을 선보였다. 이마트24 제공

딜탐은 지난 8월 꾸려졌고 브레인스토밍, 시장조사, 상품 콘셉트 선정, 상품 출시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이들이 처음 내놓은 건 ‘매혹적인 악마의 매운맛’이라는 콘셉트의 상품 4종이다.

이런 콘셉트는 보편성을 지향하는 편의점 상품 공식과 전면 배치된다. 강렬한 매운맛은 호불호가 선명하게 갈리고, 스테디셀러가 되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높다. 실험적 제품을 첫 작품으로 내놓은 셈이다. 이런 과감한 선택이 가능했던 것은 이 아이디어가 MZ세대에게서 나왔다는 데 있다. 더 많이 팔겠다는 판매자 관점의 접근 대신 원하는 상품을 사고 싶다는 소비자의 마음에서 출발한 상품 기획인 것이다.

딜탐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MZ세대의 ‘맵부심’이었다. 맵부심은 매운맛을 잘 먹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매운맛까지 먹어봤다”고 보여주며 인증하는 일종의 놀이문화도 존재한다. 맵부심을 원하는 이들에게 ‘가장 매운맛’을 선사한다는 취지도 담겼다. 이마트24 관계자는 “이제 막 출시를 한 제품들이라 아직 조심스럽지만 매운맛이 입소문을 타고, 이마트24가 매운맛의 성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매운맛을 개발하기 위해 시장조사에 나선 단계에서부터 딜탐 대원들의 맵부심도 올라갔다고 한다. 이들은 매운맛으로 유명한 전국의 식당을 돌며 아이디어를 찾았고, 횟수를 거듭할수록 매운맛 적응도가 올라갔다. 대원 중 1명은 “처음엔 매운맛을 누그러뜨려줄 500㎖ 우유를 챙겨 다녔으나 한 달 쯤 지나자 어지간한 매운맛은 그냥 매콤한 정도로 느껴졌다”고 전했다.

MZ세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매운맛이 식품 트렌드를 장악하며 관련 상품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마트24가 연도별 매운맛 상품 매출을 조사해보니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33%, 올해 9월까지는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일하게 MZ세대가 아닌 딜리셔스 비밀탐험대 1기 오현창 탐험대장은 “상품 판매를 통한 매출도 중요하지만 시도 자체가 더 큰 의미를 지닐 때가 있다”며 “시도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생각으로 기존 틀에 갇히지 않은 MZ세대의 생각을 여과 없이 담아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업계는 최근 MZ세대 직원들이 주축이 된 팀을 꾸려 젊은 소비자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GS25는 MZ세대 직원들로만 구성된 ‘갓생기획-신상기획팀’ 프로젝트를 지난 6월 출범해 히트 상품을 내놓고 있다.

갓생기획은 MZ세대 직원들이 자신들만의 ‘인생템’을 자유롭게 기획하고 싶다는 의견을 수렴해 만들어졌다. ‘갓생’이란 흔히 최고라는 의미를 담아 붙여 쓰는 ‘갓’이라는 표현과 ‘인생’을 합쳐 만든 말이다. 하루를 알차고 부지런하게 살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들이 처음 만들어낸 상품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지난달 7일 출시한 노티드우유 3종과 사랑의열매 빼빼로 등 약 20여종의 상품이 출시됐다. 갓생기획이 만든 상품들은 지난 20일까지 누적 판매량이 350만개에 이른다. 성공적인 출발에 GS25는 연말까지 갓생기획 상품을 50여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GS25 갓생기획의 상품 기획과 마케팅 활동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은 유튜브 콘텐츠 ‘갓생기획’도 선보이고 있다. GS25 관계자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MZ세대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며 “새로운 소비,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의점 업계에서 가장 먼저 MZ세대 전문 팀을 구성해 올해로 3기째를 맞은 BGF리테일 '이거어때 TFT' 팀원들이 기획·출시한 상품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BGF리테일 제공

가장 먼저 MZ세대 조직을 꾸린 곳은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이다. CU는 MZ세대 임직원으로 꾸려진 ‘이거어때 TFT’를 3년째 운영하고 있다. 사내 멘토링 프로그램을 함께 수강하던 이들이 의기투합하면서 톡톡튀는 아이디어를 실행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팀에 대한 구상이 나왔다.

올해 3기를 맞은 이거어때 TFT는 1989년생 마케팅 담당자, 90년생 상품기획자(MD), 89년생 홍보 담당자, 94년생 디자이너, 93년생 빅데이터 담당자 등 평균 나이 30세의 MZ세대 실무자 8명으로 이뤄졌다. 모두 자원해 TFT로 들어왔다.

이 팀은 종이를 쓰지 않는다. 회의는 사내 메신저와 온라인 프로젝트룸을 통해 이뤄진다. 종이 보고서도 전혀 만들지 않는다. 팀장은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이 프로젝트 완료까지 맡는다. 위아래를 구분하지 않은 셈이다.

이거어때 TFT에서 가장 최근에 출시한 히트작은 ‘델라페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다. 젊은층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빠르게 반영한 결과다. 이번 여름 출시된 20여종의 델라페 시리즈 가운데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는 판매량 4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끌었다. 송경화 MD는 “단순히 재미만 있는 상품을 만들고 기획하는 게 팀의 목적이 아니라 MZ세대가 편의점에서 찾는 상품을 발굴하는 것이 우리팀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세븐일레븐은 유튜브를 공략하고 있다. 91년생 직원이 기획한 ‘세븐스테이지’는 누적 조회수 총 150만에 이를 만큼 입소문이 퍼졌다. 전국의 특색있는 세븐일레븐 점포를 배경으로 유명 아티스트의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는 영상이다. 지난 6월 처음 공개된 박재정편은 누적 조회수 38만회, 8월 이무진편은 112만회에 이른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반응이 좋아서 현장 경영주나 아티스트 측에서 섭외 연락이 오기도 한다”며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에게 다가간 게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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