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진단조차 힘든 괴질 안구암, 방사선 금속판으로 표적 치료

[첨단 의료현장]

시력 떨어지고 눈 끝이 검게 보여
눈알에 생긴 암 ‘포도막 흑색종’

기존 안구적출·방사선 치료 대신
금속판 부착해 방사선 집중 방출
근접 치료로 안구 보존·효과 탁월


강남세브란스병원 안과 김민 교수가 안구종양과 근접 방사선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40대 여성 A씨는 오른쪽 눈의 시력이 떨어지고 눈 바깥쪽 끝이 검게 보이는 증상이 생겨 동네안과를 찾았다. 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고 대학병원에 의뢰됐다. 진단명은 ‘포도막(맥락막)흑색종’. 안구(눈알) 안에 생긴 암이었다. 암 크기가 18㎜나 돼 일반 안구암(3~8㎜)보다 훨씬 컸다. 진단한 대학병원에선 ‘안구 적출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 후 의안(義眼)을 껴야 한다는 말에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안구를 적출하지 않고 암을 제거하는 ‘근접 방사선치료’를 시행하고 있는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다시 의뢰됐다. A씨는 현재 암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A씨를 불안에 떨게 한 포도막흑색종은 성인에게 많이 생기는 안구암으로 악성도가 매우 높다. 5년 내 치사율이 35%나 된다. 다른 장기에 생긴 암이 눈알로 퍼진 전이암이나 결막 흑색종도 예후가 좋지 않다. 어린이에게는 망막모세포종이 주로 생긴다.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4~2018년 국내 발생 눈암(567명) 가운데 가장 많은 32.6%가 포도막흑색종이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안과 김민 교수는 25일 “여성은 유방암, 남성은 폐암이 눈으로 잘 전이된다. 안구의 악성 종양 중 전이암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의심이 될 때는 전신검사를 꼭 받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병 원인에 대해선 연구가 더 필요하나 환경적 요인으로 자외선 노출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대부분 초기에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아 진단이 어렵다.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눈의 중심인 ‘황반부’ 근처에 암이 생기면 초기부터 시력 저하, 상의 왜곡 등이 나타나기 때문에 일찍 발견해 치료할 수 있다. 여느 암처럼 포도막흑색종도 조기 발견 및 치료가 전이·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안구암 자체가 아주 드문 희귀암인데다 증상이 비특이적이고 다양해서 일반적인 시력저하, 눈앞에 먼지나 벌레가 떠다니는 듯함(비문증), 시야 가림 등 다른 안과질환과 감별이 쉽지 않다. 포도막염, 망막 박리, 황반변성 등 양성 질환과 오인될 수 있다. 더구나 안구암은 조직검사 없이 육안 관찰에 의해 진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험많은 안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수적이다.

김 교수는 “일반 안과에서 진단이 까다롭거나 진단명이 명확지 않은 괴질스러운 안과질환이거나 일반 안과 치료에 호전이 없다면 꼭 안구종양 전문의 진료를 통해 포도막흑색종이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실제 환자들을 보면 안과 3~4곳을 돌고 돌다가 의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19년 세계 최고로 꼽히는 미국 윌스안과병원에서 전임의 과정을 수료한 국내 유일의 안구종양 전문의다.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방사선종양학과 조연아 교수와 함께 안구종양에 ‘안구 근접 방사선치료(Brachytherapy)’를 시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포도막흑색종을 진단받으면 기존엔 안구를 적출하거나 외부에서 방사선을 쬐는 치료가 최선이었다. 안구 적출의 경우 의안 착용에 따른 미용적 문제로 심리적 위축이 크다. 외부 방사선 치료는 몸 밖에서 방사선을 쪼이기 때문에 암 주변 정상 조직들(시신경, 수정체 등)도 손상을 받아 시력 손실을 부를 수 있다.

반면 근접 방사선치료는 외부에서 방사선을 조사(照射)하는 게 아니라 안구 바깥쪽에 방사선을 방출하는 ‘루테늄 동위원소’ 금속판을 붙여서 치료하는 방식이다. 눈동자의 결막을 벗겨내고 암 부위 바로 위 공막에 지름 2㎝의 금속판을 고정한 뒤 결막을 닫고 2~3일(길게는 1주일)후 다시 열어 제거한다. 금속판이 부착돼 있는 동안 방사선이 집중적으로 방출돼 암을 파괴하는 것이다. 암 부위에만 정확히 방사선이 도달하므로 치료 효과는 높고 피폭에 의한 주변 조직 손상 등 부작용 발생은 적다. 조 교수는 “안구를 보존하면서도 암을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고 시력도 상당 부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이 근접 방사선치료를 받은 포도막흑색종 환자 88명을 연구해 발표한 논문을 보면 80% 이상이 3년간 안구를 보존했고 3년 생존율도 90%에 달했다.

단, 종양의 높이가 7㎜ 이상으로 크다면 방사선판의 효과가 떨어지므로 수술로 일부 제거 후 남아있는 종양 혹은 종양이 있던 자리에 추가적으로 부착해 치료하기도 한다. 작은 종양은 90%이상, 클 경우에도 60~70% 정도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지만 원격 전이 등이 발생할 확률이 더 높다. 최근 암세포의 정밀 타격이 장점인 ‘양성자 치료’도 안구종양에 많이 쓰이지만 크기가 작은 초기인 경우는 근접 방사선치료가 훨씬 유리하다.

조 교수는 “다만 암이 시신경 근처에 위치할 땐 어느 정도 시력 감소를 감수해야 하고 종양이 안구 앞쪽에 있을 땐 백내장, 녹내장이 올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치료 전 충분히 검토하고 안전한 치료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근접 방사선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1회 환자 부담금은 약 200만원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