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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남녀 임금격차의 본질 들여다보니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2020년 통계를 볼 때 대한민국에서 남성은 평균 한 달에 330만원을 벌고, 여성은 224만원을 번다. 이를 비율로 치면 100대 67로 격차가 작지 않다. 왜 그럴까. 다른 나라 사례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미국 경제학회장을 맡았던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을 읽었다.

골딘은 미국 대졸 여성들의 일과 가정 선택을 120년에 걸쳐 5개의 세대 경험을 통해 추적한다. 먼저 가정과 일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던 1900~1919년 대졸자들이다. 절반이 아이를 낳지 않고, 3분의 1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세대(1920~1945년 졸업)는 일자리를 구한 후 가정을 꾸렸다. 고등학교 진학률이 남성을 추월했는데 사무보조원, 타이피스트, 경리 등의 일자리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해고하거나 재취업이 안 되는 제도 때문에 일하다가 결혼하면 경력단절이 됐다. 세 번째 세대(1946~1965년 졸업)는 아이들이 학교에 갈 시기에 일터로 나갔다. 용이한 취업을 위해 사회복지학과나 간호학과로 많이 진학했다.

노동력이 부족했던 미국 사회는 기혼 유자녀 여성이 일할 수 있게 제도를 정비했다. 이후 ‘커리어’가 중요해졌다. 커리어는 단순히 일하는 게 아니라 연속성 있게 본인 이름으로 전문성과 조직의 신뢰를 쌓아 노동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네 번째 세대(1966~1979년 졸업)는 커리어를 먼저 선택하고 가정을 선택했다. 경영학 등 남성이 선호했던 전공으로 진학해 기업 중간관리자나 중역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경구피임약 도입으로 ‘혼전임신’ 결혼이 줄었다. 1980년대 이후 졸업한 세대는 커리어와 가정 모두 바란다고 한다. 임신을 원할 때 할 수 없이 포기했던 선배들을 보면서 냉동 난자나 시험관 수정 등 ‘생식보조 의학기술’을 활용하게 됐다.

그런데도 미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100대 84에서 좁혀지지 않는다. 골딘은 현대사회에서 ‘잘나가는’ 사무직과 전문직 노동이 과로할수록 단위 시간당 더 많은 보상을 하고, 일터에서 연락이 왔을 때 곧바로 대응하는 ‘온 콜 대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많은 직업이 특정한 단계까지 올라가지 못하면 탈락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사이 남편에게 커리어적 성공을 몰아주기 위해 아내들이 전략적으로 경력단절을 택하거나, 파트타임이나 유연근무제를 선택해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기에 임금 격차가 커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세대에 따른 문제들이 한국에선 동시대적이며 지역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일과 가정 중 양자택일을 해야 했던 1세대 그룹부터 일과 커리어 때문에 가정 형성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는 그룹, 커리어와 가정 둘 다 선택하겠다는 그룹들이 공존하고 있다. 여성의 본격적인 사회적 진출이 80년이 채 되지 않았고, 빠르게 변한 사회 덕에 세대별 경험이 천차만별이라 소통이 종종 어렵다. 전문직이나 대기업, 공무원, 공공 부문이라는 ‘선망 직장’ 커리어를 타려는 현재의 여성 청년들은 경력단절 공포로 가정 형성을 미루거나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커리어에 올라탄 세대 여성을 위한 보육시설 확충이나 남성 육아휴직 제도화를 시행 중이나, 비혼 여성 청년들에게 ‘출산 중심’ 정책이라며 비판을 받기 일쑤다. 같은 세대 간에도 지역적·계급적 격차가 존재한다.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직급과 임금이 올라가지 않는 ‘커리어 아닌 일’을 하는 여성이 다수이며, 대학 진학률 80% 시대의 여성 청년 중에도 적지 않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등의 ‘돌보는’ 직군이나 서비스업 일자리가 주로 그렇다. ‘커리어 아닌 일’을 하지만 괜찮은 조건에서 일하기 바라는 다수 여성의 커리어패스 형성을 지원할 정책의 대응이 늦다.

100대 67이라는 성별 임금 격차는 커리어를 실현하려는 여성들이 느끼는 문제와, ‘커리어 아닌 일’을 하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가 합산돼 구성된다. 발전국가식으로 경제가 고속 성장하거나 ‘남성 생계부양자’가 더 잘 벌어온다고 해결되지 않는 ‘추월의 시대’형 선진국 문제다. 남초 제조업 도시나 문화적 인프라마저 부족한 탓에 일자리 전망이 열악해 아이 낳고 키우는 것 외에는 선택할 게 많지 않은 지방에서 커리어를 찾아 여성 청년들이 떠나려 하는 ‘지방 소멸’ 문제 또한 포개져 있다. “지방 여성 청년에게 어떤 커리어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 그 지점이 논의의 시작점일지 모른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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