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바이든 지키기’ 전면에 나선 오바마 “야유하지 말고 투표하라”

버락 오마바 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버지니아 커먼웰스대에서 테리 매컬리프 민주당 버지니아 주지사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싸움임을 강조하며 지지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올 것을 호소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도서관 광장 단상에 오르자 가장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유세 주인공인 테리 매컬리프 민주당 주지사 후보가 나올 때보다 소리가 컸다. 2000여명의 청중은 스마트폰을 꺼내 그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짜와 거짓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그의 연설과 손짓에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는 유권자 모습은 ‘인기 많은 정치인’ 오바마의 건재를 실감 나게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선거유세 현장에 직접 등장한 건 올해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 달 2일 열리는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는 그가 전면에 등장해야 할 만큼 초박빙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선거는 조 바이든 대통령 첫해에 대한 평가이자 내년 중간선거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국정 동력마저 떨어지고 있는 상태여서 이를 막기 위한 민주당의 안간힘이 느껴졌다.

트럼프와의 대결 구도 설정

“우리는 지금 미국과 전 세계의 전환점에 서 있다. 비열함과 분열, 갈등, 종족주의와 냉소주의의 정치가 있다. 반면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큰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길도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신 1월 6일 의회 폭동, 선거사기 거짓 선동, 음모론, 투표권 제한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주요 사건을 열거하며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과 싸움으로 선거 구도를 설정한 것이다.

공화당 후보인 글렌 영킨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동일한 인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 오바마 전 대통령 메시지에 담겨있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영킨 후보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 젊은 층 유권자 지지를 얻기 위해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전략을 취해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를 지지한다고 여러 차례 선언했지만, 영킨 후보는 아직 그와 합동 유세를 벌인 적이 없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런 영킨 후보에 대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에게서 조용히 지지를 얻으려 한다”고 꼬집었다. 영킨 후보가 선거 사기 주장에 대해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영킨 후보가 지난 대선 때 사용한 개표기에 대한 감사 필요성을 언급한 점을 지적하며 “음모론으로부터 분명히 멀어지지 않고, 이를 잘못됐다고 여기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또 “부자가 (선거에) 출마할 때는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덧붙였다. 영킨 후보는 대형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 대표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영킨 후보를 언급할 때 야유가 터져 나오자 “야유하지 말고 투표하라. 야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분노는 마음속으로 하고 투표하라”고 강조했다. 그가 대선 때 사용했던 대표적 슬로건 중 하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공화당이 추진하고 있는 투표제한법을 언급하며 “민주당은 미국에서 투표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은 당신들이 투표하는 걸 원치 않는다. 무엇이 두려워서 그러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은 가장 부유한 미국인과 기업들이 세금을 공평하게 내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돌봄을 더 손쉽게 할 수 있고, 기후변화에 맞서는 싸움에서 진정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지층 결집이 관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정치에 대한 회의를 떨치고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정치에 지친 것을 알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집에서 TV로 정치 쇼는 절대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왜 정치에 염증을 내는지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위협은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라며 “우리는 지칠 여유가 없다. 민주주의를 향기롭게 하고, 더 많은 사람이 선거에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등장은 사실상 당력 총동원령과 같은 의미다.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질 바이든 여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까지 민주당 유력 인사들이 연이어 버지니아를 방문하며 유권자 결집을 부탁해 왔다. 하지만 영킨 후보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해 매컬리프 후보 턱밑까지 추격했다. 지난주 몬머스 대학 여론조사에서는 매컬리프 후보가 영킨 후보에 겨우 5% 포인트 차 우위를 점했다. 최근에는 두 후보가 동률인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싸움임을 강조하며 지지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올 것을 호소하고 있다. 매컬리프 후보는 “영킨 후보는 합리적인 공화당원이 아니다. 그는 국방색 옷을 입은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의 애완견이 주지사 되기를 원하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인기 하락이 중도층 외면을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 피어스 조나는 “정치가 너무 답답해서 관심을 끊은 친구들이 많다. 사람들이 투표하러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연설 현장을 리치먼드 대학가로 정한 것도 이를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리치먼드는 버지니아주에서 흑인 유권자가 가장 밀집된 곳 중 하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선거는 버지니아와 이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거”라며 “앉아 있지 말고 나가서 싸우자”고 호소했다.


리치먼드(버지니아주)=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접종 가로막는 음모론… 접종률 낮은 지역 ‘델타변이 적색등’
[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아프간서 손 뗀 바이든… 그의 관심은 국내 문제·중국 견제
[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미 부스터샷 시작부터 삐걱… 모호한 접종 대상 지침탓 혼선
[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리튼하우스 무죄’ 들끓는 美… 총기단체 ‘분열 마케팅’으로 기름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